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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기억의 매혹
2001-03-27

편집자

지난주,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독립영화라는 이름으로 비제도권의 영화제작 실습교육”을 해온 독립영화협의회의 독립영화 워크숍 10주년 기념행사를 하면서, 이 단체가 <씨네21>에 감사패를 주어도 좋겠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벌써 10년이 됐나.

생각해보면, 감사를 해야할 쪽은 분명 ‘우리들’이다. 첫째, 한국영화의 토대를 만들고, 한국사회의 진보에 기여하는 영화의 길을 찾던 젊은이들의 노력에 대한 감사. 그리고, 영화의 당대사를 비평과 보도라는 행위로 기록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의 감사. 기록자라는 직업을 가진 자들에겐, 하나의 흐름이 생성돼 벼랑과 거대한 바위에 부딪히며 급류를 이루고, 거대한 강이 되는 과정까지 지켜볼 수 있다면 그건 행운이다. 기록을 실천으로 삼는 자들에게도 마찬가지.

때를 맞춘 듯, 30일부터 ‘한국 독립영화 회고전’이 열린다. 서울에서도 강남, 그 개발기의 낡은 초상이라 불러도 좋을 단편영화 <강의 남쪽>이 ‘매혹의 기억’(회고전의 부제다)의 첫장에 놓인다. 김동원의 <상계동 올림픽>은 한국사회가 중진국 의식을 갖게 만든 계기가 된 88올림픽의, 국민적 열광의 이면을 비추고 있다. 거대한 아파트 도시로 변한 ‘옛’상계동의 사람들이 어떻게 번영의 회오리에 밀려났는가를 비추고 있다. 반추하게 만든다. 이 기억이 매혹이라면, 그것은 영화가 그 사람들의 눈과 목소리가 될 수 있다고, 모순을 깨나가는 힘이 될 수 있다고 굳게 믿던 이상의 기억이기 때문이리라.

그 시대의 관객에게는 그 영화들, <인재를 위하여>와 <오! 꿈의 나라>와 <파업전야>는 각별했다. 충무로의 아버지 영화들이 침묵하고 있을 때, 한국사회의 현안을 놓고 열변을 통하는 이 영화들이 이끌어내던 공감을 오늘의 관객은 느낄 수 있을까. 궁금한 일이다. 회고전을 만든 한국독립영화협회의 조영각 사무국장의 말이 아니더라도 지금은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잊혀지는 시대” 아닌가. 영화들은 아직 미숙했을 것이고, 영화가 놓여 있던 그 생생한 배경, 상영 자체가 싸움이 되던 상황도 지나갔다. 그렇게 되어 있는 지금, 그 영화들을 탄생시킨 이상과 의미를 우리가 다시 기억할 수 있게 된다면, 한국영화의 발달사를 훑어오르는 고고학적 재미 이상을 관람의 소득으로 챙겨갈 수 있다면…. 희망의 가정들이 쌓이고, 또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