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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자
2002-07-26

마감하는 목요일 저녁, 스콧 버거슨이라는 사람이 우리 사무실 한 귀퉁이에서 한참 원고를 쓰다 갔다. 그날 막을 내린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유람기를 그에게 부탁했기 때문이다. 편집장으로서 귀한 필자가 왔으니 인사도 하고 멋진 유머도 발휘하는 매너를 발휘해야 마땅하나 독설가로 이름난 그가 짓궂은 농담을 던졌는데도 못 알아듣고 맹한 표정으로 듣고 있을까봐, 언제 다 쓰고 가나, 하고 눈치만 보다 말았다. 아, 하고 싶은 말이 이건 아니었다.

아는 사람은 알 테지만, 국제문화건달로 불리는 그는 한국에 4년 동안 눌러 사는 미국인이며, 자기 혼자 잡지를 만들어 거리에서 판 돈으로 끝없이 돌아다니는 유랑자다. <발칙한 한국학>이란 한국을 비판하는 책까지 펴내 이젠 꽤 유명인사가 됐다. 그는 한국을 사랑한다고 떠벌리기는커녕, 한국사회를 독하게 꼬집는 글을 썼지만, 그의 유별난 행동에서 이 땅과 이곳 사람들에 대한 애착 적어도 호감을 눈치채는 건 어렵지 않다.

더한 사람도 있다. <씨네21>에도 종종 광고가 실리는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란 책의 저자 박노자라는 사람은 아예 한국인으로 귀화한 러시아인이다. 그와 한국의 첫 인연은 그가 고등학교 때 본 북한영화 <춘향전>이었고, 한국적인 것에 매혹된 그는 한국학을 전공하고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서 귀화했다. 그의 태생적 조국 러시아가 갖가지 곤경에 처한 점을 감안한다 해도, 20대에 박사학위를 받고 노르웨이에서 교수 노릇을 할 만큼 학식을 쌓은 사람의 귀화는 손쉬운 선택이 아니다. 귀화는 한 인간이 택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결단 가운데 하나기 때문이다. 그가 쓴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거의 혹독하게 느껴지는 한국사회 비판론이다. 깊은 애정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니 경청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렇게 결점이 많은 나라에 그 똑똑한 사람이 왜 귀화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누구라도 들 것이다.

지난 목요일밤 뒤늦게 본 일본영화 <고>의 주인공의 친구 가운데 조총련계 고등학생 정일이란 친구가 있다. 그는 모범생이며, 친구들이 하나둘씩 한국 국적 혹은 일본 국적으로 ‘변절’해 학교를 떠날 때도 흔들림없이 조총련 학교 교사를 꿈꾼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대목은 조선말을 쓰지 않는다고 급우가 엄격한 교사에게 구타당할 때, 정일이 “우리에겐 날 때부터 조국이란 없었어”라고 교사에게 항의하는 장면이었다. 그는 멍청한 국가주의자도 아니었고 주사파는 더더욱 아니었으며, 차라리 명민한 허무주의자였던 것이다. 정일이란 인물을 보면서, 스콧 버거슨과 박노자가 떠올랐다.

조국애가 별로 없는 나는 실존하는 두 외국인과 한 영화 속 인물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그들이 나라사랑과 조국의 발전을 자주 외치는 사람들보다 훨씬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는 건 알겠다. 그들이 사랑하는 건 혈연이나 지연처럼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요소와 무관하며, 그들의 체온을 덥히는 살아 있는 인간과 구체적인 사물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애정을 갖거나 헌신하려는 대상의 부실함과 허망함을 알고 있었다. 그런 애정이 사람을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