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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노 vs 김수용
2002-09-09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미켈란젤로의 대작에 천장과 벽면을 내놓은 시스틴 성당 입구. 그 축쇄한 세장이 한조를 이루어 열두 남짓 세트가 나란히 서 있다. 관광 가이드들이 그 앞에서 벽화에 대한 설명을 한다. 안에서는 설명이 금지된다. 들어가보면, 영역의 신성함을 유지하자는 목적이 아니라는 걸 눈치챌 수 있다. 인파의 유속을 재촉하려는 것이다. 그 많은 관광객들! 나는 지금 로마에 와 있다.

그는 이 사람들에게 성공적으로 존재를 확인시키는 조역이다. 본명은 스테파노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벽화제작에 앞서서, 서구 르네상스의 거인 미켈란젤로는 완성되기 전에는 그림을 절대 공개하지 않겠다고 교황의 확약을 받는다. 한해, 두해 세월이 쌓이자 교황은 초조해지고, 궁금해진다. 좀 보자, 청을 해도 미켈란젤로는 거절한다. 어느 날, 충성심과 노파심이 남다른 인간이었음이 분명한 스테파노라는 주교가 성당 안을 엿본다. 모든 인물들이, 심지어 예수까지도 벌거숭이다! 그는 아마 놀라움과 분노, 그리고 ‘한건 했다’는 환희가 뒤범벅된 일종의 고양상태에서 교황에게 달려갔을 것이다. 교황이 가필 또는 개작을 요구하자 작가는 약속 위반이라고 감히 대들었을 테고. 이 골치아픈 천재는 벽면과 제작비를 제공한 당대 최고의 권위로부터 자신의 그림을 지킨다.

옛 이야기는 계속된다. 분이 삭지 않은 작가는 검열미수범 스테파노를 작품 속에 출연시킨다. <최후의 심판> 맨 아래쪽, 지옥 부분이다. 굵은 뱀이 그를 칭칭 감고 있다. 이야기는 다시 계속된다. 스테파노가 교황에게 청한다. 명색이 그래도 성직자인데 거기 박혀 있기 민망합니다, 손 좀 써주십시오. 글쎄, 네가 연옥에만 있어도 어찌 해보겠으나, 지옥으로 이미 가버렸으니 내 힘으로도 구원할 수 없겠구나.

그가 어디서 나서, 어떻게 살다 갔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그의 얼굴에 눈을 바짝 갖다댄다. 요즘 식으로 ‘성공한 조역’이 된 이 옛사람 앞에서 불현듯 우리의 김수용 감독과 그 베레모가 떠오른다. 이건 순전히 단선적인 상상력 탓이다.

그러나 스테파노들이여, 절망은 없다. 당신들은 고집쟁이 예술가가 사라진 뒤에 얇은 너울을 그려넣어 인물들의 ‘치부’를 가릴 수 있었다. ‘몸’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인간의 출연을 저지함으로써 당신네 권력기반의 유실을 막자는 의지를 관철할 수 있었다. 너울 없이도 <천지창조>가 춘화가 됐을 리 만무하지만 당신들은 그렇게 존재의미를 획득했다.

이곳 이탈리아에서 <죽어도 좋아>가 다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는 소식을 인터넷으로 접했다. 영상물등급위의 매파들은 <죽어도 좋아>에서 음란성을 포착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도돼 있었다. 주인공들이 그들의 성적 상상력을 자극할 만한 선남선녀가 아니었기 때문일까? 그들의 수용 태도 분석은 다른 자리로 미루자. 지금은 우선, 이번 재심에 참여한 등급위원 15명 각자의 소견을 듣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