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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그의 힘
2002-12-20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열광한다. 도대체 어떤 작자기에. 자본주의 강대국의 패권을 지키기 위해 살인해도 좋다는 면허증도 받았고, 독점적으로 최첨단 무기들을 제공받았고, 무엇보다 ‘남성적’ 매력이 넘쳐 눈길이 마주치면 원하는 미녀들이 목숨까지 바쳐가며 로맨스를 구성해준다. 되풀이되는 이야기들이 상투적이라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시대착오적이라고 그렇게 진지하게 달려들지 마시지. 이건 오락인데. 즐길 때 즐기지 못하다니, 그것 참 촌스럽네.

여자는 말한다. 내 혀도 맛봉오리의 기능은 범세계적이어서, 그 화려하고 기름지고, 때로는 적절히 산뜻한 볼거리들을 탐식하곤 해. 그런데 식탁 구석에 놓인 질박한 자연식이 이따금 마음에 걸리네. 자신의 땅을 지키기 위해, 그토록 처절하게 백인들과 싸워온 마오리족의 후예. 그 선조들이 지켜온 땅을 물려받았으되 그 땅은 백인의 문명에 휩쓸려버렸고, 거기 적응하는 방도는 익히지 못한 마오리들이 어떻게 자신의 땅에서 유배되는가를, 어떻게 황폐해지는가를 거칠게 그려내는 저 사실주의말야.

여자의 호의를 타마해일은 이렇게 차단한다. 나는 그 사람과 경쟁이 안 돼요. 당신을 즐겁게 해줄 수 없어요. 마침 그 사람은 적당히 재능도 있고, 순박하기도 한 이 청년에게 우리 집엔 빈방이 많다며, 들어와서 살라고 제안한다. 출퇴근도 같이 하고 좋지 않으냐고. 운전이라는 노동은 당연히 타마해일의 차지다. 그는 그 사람들에게 빼앗긴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자던 지난날의 심지를 간직해낼 수 있을까 쓸데없는 질문. 해일은 경쟁력을 갖춘 ‘그 사람’이 되기로 작심할 텐데.

꿈은, 올해 한국 최고의 유행어처럼, 이루어졌다. 타마해일은 마침내 그 사람이 되었다. 한때 마오리의 진실을 보여주겠다 했던 그 사람, 당신의 영화가 진실하냐 아니냐는 질문에 답한다. 이건 오락이야. 너무 진지하게 접근하지 마. 악의가 있었던 것은 아냐.

하기야, 우리에게도 영화는 오락이(었)다. 그 사람, 우리집을 롤플레잉 게임의 유희판으로 선택하기 전에는. 과잉반응인가. 아직은 다중의 판단이 유보된 시간이다. 먼저 타마호리의 대륙(또는 섬) 대양주에서 열린 <007 어나더데이> 시사기를 싣는다. 오늘의 관심을 일시적 흥분으로 태워버리지 않고, 대중의 영웅이 지닌 정치적 의미를 숙고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