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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2003-01-10

편집장

<네 멋대로 해라> DVD가 나왔다는 소식과 인정옥 작가의 ‘내 인생의 영화’를 실으면서, 때가 많이 늦었다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이 복수 이야기를 해야겠다. 복수는 인정옥 작가가 쓴 TV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의 주인공이다. 지난해 여름 휴직에 들어간 직후에 메일을 보내느라고 PC방에 들렀다가 아침을 맞은 적이 세번 정도 있었다. 밤새 복수를 만났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올 무렵 어느 날에도 비슷한 짓을 했다.

길가는 사람들에게 2002년의 인물 셋을 꼽으라고 한다면, 대부분 노무현과 히딩크를 우선 말할 것 같다. 나도 그럴 것 같다. 나는 거기다 복수를 더하고 싶다. 드라마가 끝난 뒤 <네 멋대로 해라>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많은 사람들이 “복수가 보고 싶다”고 적고 있다. “재미있다”거나 “감동적이다” 혹은 “멋있다”가 아니라 그냥 그가 보고 싶은 것이다. <네 멋대로 해라>가 정말 우리 시대 최고의 드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잊혀지기 힘든 인물을 뜻밖에 TV 드라마에서 발견했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그는 어쩐지 내가 볼 순 없지만 멀지 않은 곳에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느낌에 종종 빠진다. 왜 그가 보고 싶을까.

내게 있어서, 그가 보고 싶다는 건 그와 대화하고 싶은 욕망이다. 나로선 이건 낯선 체험이다. 영화와 소설 속의 많은 영웅 혹은 반영웅에게 매혹돼왔지만, 그들을 혹은 그들과 같은 인물을 길거리에서 마주치고 싶은 생각은 든 기억이 없다. 그러나 그를 만나면 같이 라면을 먹거나 소주를 마시고 싶다. 복수는 영웅도 반영웅도 아니다. 그는 이룬 게 없다. 부당하게 다치거나 패배함으로써 세상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는 어떤 태도를 보여줬을 뿐이다. 그 태도 때문에 나는 그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 태도는 온전한 의미에서 수평적인(혹은 탈남근적이라고 부르고 싶은) 태도다.

그가 아버지와 꼬붕이와 찬석을 대하는 태도는 근본적으로 같다. 심지어 연인인 경과 적에 가까운 형사 정달에 대한 태도도 질적으로 동등하다. 세상을 수직적으로 위계화하려는 인물들(예를 들면 경의 아버지나 정달)의 시도를 그는 그의 수평적 태도를 지킴으로써 무력화한다. 복수는, 우리가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실패를 거듭해온, 내 안과 밖의 수직적 질서로부터 자유로운, 아니 그 질서를 애당초 모르는 인물이다.

비약일진 모르지만, 내겐 노무현과 히딩크의 얼굴에 복수가 종종 겹쳐진다. 복수와는 모든 면에서 서로 다른 두 실존 인물에게도 복수의 태도가 느껴지기 때문이다(느껴진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두 실존인물에 대해선 내가 아주 한정된 정보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히딩크의 경우엔, 그가 보여준 직접적 태도보다는 우리가 그를 우리의 친구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우리 관념 속에 있는 민족간의 수직적 질서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노무현은 복수와 좀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가 누구도 무서워하지 않고 누구도 무시하지 않을 것 같은 태도와 말투 때문에 당선됐다고 나는 멋대로 짐작하고 있다.

세 인물과 함께 2002년의 우리 사회는 수평적 사고가 크게 진전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나는 복수가 보고 싶다. 그건 내 머리 속의 그리고 세상의 수직적인 질서가 여전히 나를 억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엔 또 다른 그리고 더 많은 복수를 만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