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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질서
2003-01-30

편집장

프랑수아 트뤼포가 기꺼이 ‘가장 위대한 감독’이라 불렀던 장 르누아르는 1차 세계대전 때 최전방의 병사로 참전했다. 그리고 그때의 부상으로 평생 다리를 절었다. 그가 자서전 <나의 인생 나의 영화>에 남긴 회고담 중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전쟁이 벌어지면 으레 관능적 차림의 여가수들이 전방의 병사들에게 위문공연을 와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노래로 그들을 격려했다. 르누아르가 보기에 이건 꼴불견이었다. 병사들은 그런 노래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여가수의 미끈한 허벅지만 좋았다고 한다). 최전방의 병사들이 좋아하는 노래는 오히려 18세기 말의 감상적 가요 <93년 파리>였다. 그 노래는 혁명기인 1793년에 한 젊은 귀족이 사랑하는 여공 리종을 만나러 파리에 왔다가 체포돼 단두대에 보내지는 사연을 담고 있다. 노래는 젊은 귀족의 반항적인 독백으로 이렇게 끝맺는다.

“나는 비웃겠다. 참수인 상송을/ 그의 작업은 이미 끝난 것이 아니더냐/ 그대에 대한 나의 사랑 때문에, 리종/ 나의 머리는 이미 나의 것이 아니므로.”

르누아르에게 이 노래의 성공은 놀라운 일이었다. 이 노래는 혁명을 주도하던 자코방 당원들에게 처형당한 귀족의 심정을 담고 있는데, 이 노래를 좋아한 병사들은 대부분 무정부주의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르누아르는 당시의 동료 병사들에 관해서 이렇게 적고 있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전투병들에게 명칭을 달자면, 완전한 무정부주의자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들은 그 어떠한 것에도 상관않으려는 태도였다. 특히 고귀한 감정 따위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성당이 파괴되는 장면 앞에서도 그들은 냉담했다. 그들은 자신이 자유를 위해서 싸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는데, 그건 현재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들은 인생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신기한 사실은 이러한 환멸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훌륭하게 싸웠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질서 속에 갇혀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이 짧은 일화엔 너무 많은 게 담겨져 있어, 읽으면서 가슴이 뛰었다. 여기선 다만 <영웅>을 말하기 위해 인용했다. 나는 <영웅>을 보면서 이 회고담이 떠올랐다. 비유하자면, <영웅>은 르누아르의 병사들에게 애국을 외치는 대규모 공연처럼 느껴졌다. 나는 <영웅>의 어떤 면을 사랑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거기에 속한다. 초반의 검과 창이 부딪치는 아찔한 장면을 보는 것에만 7천원을 지불해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이 영화엔 끝내 동의하기 힘들다.

난 어떤 영화가 기반한 세계관과 그 영화의 자질과는 거의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본 존 포드의 서부극들은 미국 우파의 세계관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았지만(그래서 혹시나 부시가 존 포드의 영화를 좋아한다 해도), 그래도 그의 영화들은 늘 감동적이다. 존 포드의 영화는 비유컨대 르누아르의 병사들이 사랑한 같다. 자신을 존재케 한 질서에서 자신이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아버린 자의 비애가 거기엔 있다. 우리가 걸작이라고 부르는 많은 영화들은 이 아이러니의 숙명성을 자신의 내부로 받아들인다.

<영웅>이 걸작이 아니라서 문제는 아니다. <영웅>은 거꾸로 간다. 질서를 응시하는 게 아니라, 그 질서 밖에서 안으로 들어간다. 질서는 도달해야 할 결론이 되고 찬미된다. 더구나 그 질서는 지금 이 순간 가장 위험한 미국식 패권주의를 닮아 있다. 장이모는 거꾸로 가고 있다. 그는 아무 생각이 없거나 아니면 위험하다. 장이모 영화의 매혹과 혐오 사이에서 동요하는 김봉석의 <영웅> 비판론에 그래서 전적으로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