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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03-04-04

1968년, 프랑스 전역에선 노동자와 학생 등 400여만명이 가담한 소위 5월 혁명이 폭발했다. 이 와중에 칸영화제가 개막되자, 장 콕토관에선 집회가 열려 영화제 중단 여부를 두고 영화인들의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이 집회에서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 등 누벨바그 감독들은 영화제 중단과 노동자 및 학생과의 연대를 주장했다. 고다르는 노동자의 현실과 투쟁을 담지 못한 영화인들의 반성을 촉구하는 유명한 연설을 했고, 마침내 트뤼포는 영화제 중단을 선언했다. 이해 2월 프랑스 영화광들의 정신적 지주 앙리 랑글루아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관장직에서 해임됨으로써(그를 해임한 사람은 당시 문화부장관이던 앙드레 말로였다) 촉발된 프랑스 영화인들의 투쟁이 마침내 노동자의 투쟁과 조우한 영화사적 사건이었고, 그 최전선에 트뤼포와 고다르가 서 있었다. (이 과정에 대한 영상기록이 곧 출시될 프랑수아 트뤼포의 DVD <훔친 키스>의 서플에 담겨 있다)

어두운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미국은 재앙의 무기인 열화 우라늄탄을 이라크에 퍼부었으며, 세계는 추악한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로 들끓고 있다. 한국에선 파병 문제를 놓고 사회 전체가 거대한 논전을 치르고 있다. 지금 가장 고통스러운 질문은 “당신의 견해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일 것이다. 그리고 전쟁을 반대하는 우리는, 나는 아직 당당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지구를 지켜라!>가 개봉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영화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이 영화를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김봉석의 말대로 한국영화사상 가장 기발하고 엽기적인 상상력 때문이지만, 추악한 전쟁 소식이 세상을 뒤덮고 있는 지금 이 영화의 마음이 우리의 소망을 응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상상력은 추한 삶을 마취하는 상상력이 아니라, 연대와 평화의 삶을 격려하는 상상력이다.

1970년대에 정치적 노선과 영화적 견해의 차이로 트뤼포와 갈라섰던 고다르는, 트뤼포가 죽은지 4년 뒤 간행된 <서한집> 서문에서 “우리를 입맞춤처럼 묶어주었던 것은 스크린, 다름 아닌 스크린이었고, 그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고 썼다. 우리는 이 진귀한 영화 <지구를 지켜라!>가, 그리고 앞으로 우리와 만날 영화들이 갈라진 현실을 입맞춤처럼 묶어주는 상상력의 영화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