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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
권은주 2003-04-25

지난해 봄 <키노>가 보낸 설문 가운데 “현재 데뷔를 준비 중인 신인감독들 중 가장 주목하고 있는 감독이 있다면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써보냈다.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그의 단편 에서의 이야기꾼으로의 능력, 상상력, 기발한 유머감각을 떠올리면 왜 이 감독이 아직 데뷔를 안(못)하고 있는지 의아하다. 김지운에 버금가는 창의적인 장르영화 감독의 탄생이 기대된다.” 설문에 응했던 사람 중에 다른 두명도 같은 의견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확히 1년 뒤, 그는 기대한 것보다 훨씬 뛰어난 데뷔작을 들고 나타났다. 영화 글로 먹고사는 사람으로선 이런 때보다 더 신나는 경우는 드물다. 시사회장을 나오면서 흥분을 감추기 힘들었다.

개봉하자 그 영화는 흥행에서 참패했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뛰어난 데뷔작이 관객에게 외면당하는 일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더 많았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 동네 사람들이 이 영화가 다수의 관객을 즐겁게 하긴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을 했고,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관객이 봐주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결국 그렇게 되지 못했다.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우울한 일이다. 더 이상 그런 영화를 만드는 일이 점점 더 무모한 용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며, 그런 이유로 이제 그런 영화를 보는 일이 점점 더 희귀한 일디 될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다. 상업적 실패는 영화 만드는 사람에게 거의 공포다. <지구를 지켜라>를 만든 제작진에 경의를 표하지만, 때론 파산을 각오하고 승부하는 사람들에게, 왜 이런 훌륭한 영화를 계속 만들지 않고 가벼운 코미디에 몰려가느냐는 소리를 할 낯짝은 서지 않는다.

지독한 편애라는 일부의 비난을 듣더라도 그런 영화를 옹호하는 것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것만으로 괜찮을까, 혹시 더 없을까, 고민하다, 결국 한국영화의 살림살이 문제를 짚어보기로 했다. 시장에서 외면당할지 모를 좋은 영화를 만드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 이유 중의 하나가, 한국영화 가계부의 허술함에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그건 많은 영화인들이 동의하고 있다. 이번 호부터 시작하는 한국영화산업 점검 시리즈는 그런 작은 고민의 산물이다.

첫 번째로 배우의 개런티 문제를 끄집어내면서, 매우 조심스럽다. 한 영화의 흥행성적과 그 영화의 작품성이 무관하듯이, 한 배우의 개런티와 그 배우의 연기력이나 가치와는 무관하다. 다만, 우리는 가계 지출의 구멍이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선에서 메워졌으면 하는 생각이다. 우리의 제안이 결정적인 해법이 되진 못하겠지만, 한국영화의 합리적 살림살이에 작은 참고 자료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