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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지공원

가만 보면 사람들은 무작정 애정을 갖게 되는 대상들을 제각기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건 영화나 음악일 수도, 어떤 생명체일 수도, 혹은 특정한 순간일 수도 있다. 그게 비슷할 때 우리는 사람끼리도 비슷하다거나 서로 통한다고 이야기한다.

나에게는 쌈지공원이 그런 것 중 하나이다. 옷에 매달고 다니던 작은 주머니라는 뜻의 쌈지에서 유래했을 이 명칭은, 도시 곳곳의 조그만 귀퉁이들에 나무를 심고 의자를 놓아 휴식할 수 있게 만든 공간을 가리킨다. 그것은 빌딩 사이의 세모난 콘크리트 땅이나 동네 은행 앞 등 예기치 못한 곳에 나타난다.

<씨네21>이 자리잡고 있는 곳에도 쌈지공원이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흔히들 만리동 고개라 부르는, 공덕동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한겨레신문사는 건물 모양이 희한해서 6층과 9층에 각각 옥상이 있다. 거기에 화단을 둘러 꽃을 심었고, 서너뼘짜리 물길도 내어 그 위에 앙증맞은 나무다리까지 얹었는데 심지어 물고기도 산다. 나무로 만든 벤치는 오늘처럼 비가 내린 날이면 촉촉한 물기를 머금는다.

일하다가 잠시 숨을 고를 때, 아니면 일하기 싫어 꾀부리고 싶을 때 혼자 슬쩍 옥상정원에 올라가는데 그 즐거움은 야릇하다. 출퇴근하거나 밥 먹으러 다닐 때와는 사뭇 다른 조망을 얻게 되는 것도 새롭다. 옥상정원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한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행동이나 발걸음, 목소리, 눈빛 등이 사무실이나 바깥 현장에 있을 때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쌈지공원 효과’라고 부르면 어떨까. 도시의 우악스러운 공간 기획에 저항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굴복하지도 않는 쌈지공원은 자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 앙증맞은 품을 내어보이며 대도시의 일상에 미세한 호흡 길을 뚫는다.

어쩌면 영화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종의 쌈지공원이 아닐까 생각한다. 생활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고 인생의 효율적인 목표달성에 도움도 안 되지만, 잊을 만하면 한번씩 찾아보면서 자신을, 주변을, 세상을 느끼거나, 혹은 이 모든 것의 공허를 음미할 수 있게 해주는 쌈지공원.

영화 보고 논쟁하는 것을 간절한 투쟁처럼 하는 이들의 정열에 놀라기도 하지만, “이제는 삶 속에서 영화를 바라보는 분들이 정겹습니다. 영화 속에서 삶을 바라보는 분들보다 말입니다”라고 적은 어느 영화광의 독백이 감동적이기도 하다. <씨네21>이 독자님들을 통해 우리 사회에 싱그러운 호흡을 가만히 실어나르고 부드럽게 간지럽히는 쌈지공원이 되는 상상을 해본다.김소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