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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낫다`
2003-09-04

한주 동안 잡지를 만들면서 미리 본 영화 가운데 <오! 브라더스>가 며칠째 머리 속에 맴돌고 있다. 영악한 형이 조로증을 앓고 있는 어린 이복동생과 부득이한 동행을 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주축으로 한 이 영화는, 대략 분류하자면 비평계보다는 대중관객의 취향을 더 많이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효력이 검증된 흥행 장치에 의존하게 마련인데, <오! 브라더스> 역시 조폭영화로부터 변주되어 나온 양아치 캐릭터의 코믹 코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거기에 장애우와 이른바 ‘정상인’의 소통과 이해라는 휴먼드라마를 가미했고, 어린아이가 질서잡힌 세계에 들어와서 일으키는 무구한 혼란이 이른바 ‘어른’들에게는 공포일 수 있다는 관찰을 웃음의 원천으로 끌어들인다.

상업영화로서 평범한 길을 가면서도 새로운 노력까지 조금 보태어 대중영화를 한뼘쯤 착실하게 갱신시키는 작품들을 만날 때, 한국영화가 균형있게 성장 중이라는 확신이 짙어진다. 그런데 이런 유의 확신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상업영화들이 보여주는 소소한 변화를 한국영화 발전의 지표로 인식하는 데에 우리가 그다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일부 전문 필자들 혹은 비평가를 지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어떤 기류에 대해서 저항하고 싶어질 때가 종종 있다. 독특한 작가의 출현을 알아보고 환영하는 일, 외국에서 탄생하고 이론화된 장르론이나 작가론에 숙련되는 일을 비평가가 할 수 있는 더 나은 무엇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중요한 기여이며, 더욱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닐 터이다.

다만 자국의 토양 안에서 자생적으로 탄생해서 갈지자걸음 끝에 마침내 하나의 장르로 진화, 성장, 사멸하는 토착 상업영화의 역사를 추적하고 기록하고 이론화하는 일은, 한국의 비평가만이 할 수 있는 숭고한 창조적 작업이라고 믿는다. 비평가로 출발해서 한국 영화사에 관한 독보적 역사가로 남은 고 이영일 선생이 후배 비평가들에게 던지는 교훈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작가영화’가 ‘상업영화’보다 더 낫지 않고, 그 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단지 자신의 취향을 소중히 즐기고 가꿀 수 있을 뿐이며 타인의 취향과 선택을 존중할 뿐이다. 인류 역사에서 무엇이 무엇보다 더 낫다는 생각은, 그것이 종교든 제도든 신념이든 취향이든 혹은 출발 동기가 어디에 있었든 간에 결과는 폭력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