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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나뭇잎
2003-09-19

오늘 아침 샛노랗게 물든 은행 한 그루를 보았다. 온산이 아직 푸른 중에 홀로 노랗게 변한 것을 마주하는 기분은 감탄보다 충격에 가까웠다. 그 나무는 내내 비로 지새는 늦여름을 견디지 못한 예민한 녀석이었을 것이다. 시인은 사회의 환부를 남보다 먼저 감지하는 몸을 지닌 존재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산속의 노란 시인!

무언가를 미리 보는 눈에 대해 생각할 때면 에두아르 마네가 떠오른다. 그의 만년작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은 벨 에포크(좋은 시절)로 불리는 19세기 말 파리의 정경을 인상파 특유의 감각으로 전해준다. 그런데 이 그림의 핵심은 거울로 비치는 술집의 화려함이나 종류도 다양한 술병과 과일, 장식적인 옷차림으로 가득한 사교계의 생동감이 아니라, 홀을 내다보고 있는 어린 여급의 무표정한 얼굴이다.

그림 속 소녀의 얼굴은 예언적이다. 그 상황과 표정은 이후로 백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세계 곳곳에서 보아왔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보게 될 종류의 것이다. 마네는 근대 도시가 탄생시킬 개인성을 소외로 정의한 셈이고, 그가 옳았다.

오늘날에는 먼저 감지하는 몸, 미리 보는 눈을 만나는 통로가 주로 영화인 것 같다. 이번주 <씨네21>이 주목한 작품들을 예로 들면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처럼 자의식적으로 일관성 있게 구축된 영화에서부터, 하려는 말이 선명치 않거나 스스로 모순을 껴안고 있는 <조폭마누라2: 돌아온 전설>, 그리고 베니스에서 전해오는 먼 곳의 새로운 영화들에 이르기까지 종류는 달라도 세상의 모든 영화들은 한결같이 세상의 문제적 인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 속 문제적 인간들은 산속에서 홀로 먼저 노래진 은행나무를 닮았다. 영화가 예술가, 범죄자, 혁명가, 도발적이거나 정신이상인 사람들을 주로 다룬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지나치게 예민하면서 순응하기 어려운 정신을 가졌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또한 이 세상이 바뀔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각자의 방식으로 드러내주는 사람들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