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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의 미래
권은주 2003-10-10

부산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국제영화제 개막 이틀째 되는 날이다. 개막 당일 수영만은 한국 가을날씨의 매력을 유감없이 뽐내는 저녁 바닷바람 속에 성황을 이뤘다. 확실히 축제는 단조로운 일상과 노동의 리듬을 일탈하고 궁극적으로는 보완하는 생활의 악센트다.

올해는 부산영화제가 해운대 시대로 전환하는 원년이라고 기록될 것이다. 국제적으로 명망있는 영화제들이 거의 예외없이 쾌적한 휴양 기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부산영화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데, 영화제 전용공간이 착공되는 2005년이면 멀티플렉스를 포함하는 안정적인 상영관 인프라, 배후의 고급 숙박시설 등과 더불어 영화제가 제2의 도약기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공간상의 변동과 더불어 미묘하지만 중요한 변화가 동시에 감지된다. 남포동의 좁은 광장을 송곳 꽂을 데도 없이 가득 메우며 스타를 향해 꺅꺅 환호하던 예의 팬덤을 어떤 이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젊은 영화 열기라고 불렀지만, 무언가 결핍에서 기인한 극단적인 열정으로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올해 해운대에서 마주치는 젊은 관객은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전형적인 도회풍의 거리에 쇼핑몰과 오락 기능을 구비했고 건물 벽에 “멋지게 놀자”는 슬로건이 적혀 있는 멀티플렉스의 관객은, 낯선 외국영화조차 문화 쇼핑의 대상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어떤 이에게는 “정신 사납게” 들리는 음악소리에도 그들은 자연스럽게 몸을 섞고, 밤이면 그 소리마저 잦아든 건물 입구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적막한 야경에 스며 있다. <씨네21 데일리>의 영문 기사는 이런 분위기를 ‘sensual’이라는 용어로 묘사했다. 몸으로 느끼는 감수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같은 관객과 함께 해나가야 할 영화제 당국이 미래의 비전을 세계 10대 영화제니 5대 영화제니 하는 용어로 제시하지 않기를 바란다. 구태의연한 근대주의적 발상 혹은 좋게 말해도 낡은 시네필의 감수성으로 여겨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개막식에서 정치인이 등장할 때 유독 요란해지던 팡파르 소리도 같은 이유로 생경했다.

최근 <한겨레21>이 아주 인상적으로 진단한 것처럼 지금 한국의 젊은 에너지는 ‘쿨 문화’로 기울고 있다. 해운대 시대를 맞이하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쿨한 영화제로 발전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