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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도서관(2)
2001-06-08

편집자

<대학 영화과와 애니메이션 관련학과가 많기로는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대한민국엔 영화사가 없다. 생각해보면 좀 이상한 일이다. 1969년판 이영일의 <한국영화전사>가 아주 오래 유일한 영화사 독본으로 읽혀야 했고, 거기에 수록되지 못한 일제하 좌파 영화운동사는 세대를 두어번쯤 건너 영화평론가 이효인의 <한국영화역사강의1>이 출현하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배 종식 이후부터 지금까지를 아우르는 영화사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초창기, 그러니까 일제 식민지배 아래서 만들어진 극영화들이 단 한편도 남아 있지 않고, 기록과 보존에 둔한 우리 현실과 무척 어울리는 풍경 아니냐고 접어둬야 할까?

올초 타계한 고(故) 이영일이 남긴 초창기 영화인 인터뷰 자료는 우리 처지가 그렇기에 더 소중했다. 그들의 기억 속에는 사라진 영화들이 기거하고 있었으므로. 이영일 선생의 30여년 전 녹음 테이프는 <임자없는 나룻배>의 이규환, 나운규의 친구 윤봉춘, 여배우 복혜숙, 촬영감독 김성춘, 시나리오작가 최금동 등의 육성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한국영화사의 사라진 기억을 되살리려던 이영일의 작업이 ‘드디어’ 지면을 통해 공개된다. 그 기억을 공유하고 분배하여, 영화사의 거름을 삼고 싶다는 소망을 기꺼이 실현시켜주신 이영일 선생과 유족께 감사드린다. 이미 밝혔듯, 생전의 선생으로부터 초창기 영화인들의 육성을 되살리는 과제를 기쁘게 부여받은 소장 영화평론가 김소희와 더 젊은 영화학도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 305호부터 시작되는 ‘이영일이 만난 한국영화의 선각자들’ 연재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제까지의 노고와 앞으로 남은 노력에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인터뷰 시기가 60년대 말이었으니, 절반의 기억은 분단된 땅의 북쪽에 묻혀 있을 것이다. 그나마 남은 기록을 정리하는 책임조차 너무 오래 방기해온 건 변명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소리로 살아남은 이들의 그 소리를 따라서 작업을 시작하는데, 떨림이 없을 수 없다.

이 연재는 이영일의 영화사를 재정리하는 일의 시작이다. 증언 전체를 가감없이 단행본으로 묶어내고, 다시 그것을 토대로 <한국영화전사>를 수정보완하는 것이 다음 단계. 또, 소리는 활자가 되어 ‘대중보급’되는 순간 우리 초창기 영화사 연구의 공동자산이 될 것이다. 이것이 한국영화통사에 관한 관심을 지피는 밑불이 되기를 바란다면, 너무 커다란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