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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떡 시스터즈

그놈은 멋있었다. 영화 얘기가 아니다. 한기주, 그 남자 얘기다. 지금 두집 중 한집에서 보고 있다는 드라마 <파리의 연인>, 물론 나도 본다. 어떻게 이 드라마가 내 마음에 파고들었나? 생각해보니 기주가 강태영을 대하는 태도 때문인 것 같다. 같이 밥 먹을 마음 없다는 태영에게 기주가 말한다. “나 혼자 밥 먹는 거 싫어서 그래. 그냥 앉아 있어.” 위압적인 명령은 아니지만 단호하다. 웬만한 자신감 아니면 이렇게 말 못한다. 아, 떠올리기 싫지만, 밥 안 먹겠다는 그녀한테 그냥 밥 좀 먹자는 말을 하면서 난 얼마나 안절부절못했던가. 그녀의 마음을 잡아야겠는데 배는 고프고, 확 나도 일어날까, 하다 생각해보면 시켜놓은 음식이 아까웠다. 왜 기주처럼 멋지고 쿨하게 못했던 걸까? 후회가 된다.

급기야 지난주 일요일엔 기주가 슬퍼하는 태영에게 노래를 들려줬다.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다니, <나비야>가 나올 때 난 박신양이 서민정처럼 되길 바랐다. 헛된 기대였다. 박신양은 <사랑해도 될까요>를 멋들어지게 불러버렸다. 악기와 노래에 젬병인 나는 속이 쓰렸다. 졌다, 한기주, 너 정말 잘났다, 그런 심정이었다. 모두가 말하듯 기주는 백마 탄 왕자다. 그러나 기주가 과거의 왕자들과 똑같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기주는 로맨틱한 왕자인 동시에 자신감 넘치는 쿨 가이다. 재력과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확실히 기주는 성격이 좋다. 착하다는 말이 아니다. 사람들은 착한 남자가 아니라 단호하고 자신감 넘치는 남자를 좋아한다. 게다가 피아노 연주와 노래까지 잘한다면… 천하무적이다.

어디를 가나 <파리의 연인> 얘기만 나오는 시국에 시루떡 시스터즈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김혜리 기자의 추천이었다). 인절미도, 백설기도 아니고 시루떡이라니, 처음 이름을 들었을 때 푸하 웃음이 튀어나왔다. 대체 시루떡 시스터즈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있다는 사실부터 믿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러나, 정녕 그들은 지난 주말 내 삶에 한줄기 빛이었다(시루떡 시스터즈는 MBC의 시트콤 <두근두근 체인지>에 나오는 세 소녀다). 그들은 럭셔리와 웰빙, 얼짱과 몸짱의 시대를 온몸으로 거부하는 얼꽝들이다. 뚱뚱하다고, 못생겼다고, 가난하다고, 키가 작다고 놀려대는 사회를 향해 그들은 어설픈 저항을 시도한다. 지난주, 가수가 꿈인 슬기가 가수 이선희 앞에서 노래하는 장면은 감동이었다. 이 못생긴 소녀는 자신이 가진 오직 한 가지, 노래 실력만으로 어른들의 편견과 싸우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한기주의 노래보다 슬기의 노래가 좋다. 세상이 선망하는 모든 것을 가진 한기주와 세상이 멀리하는 모든 것을 가진 시루떡 시스터즈, 둘의 대비는 현실의 두 얼굴 같다. 재산와 외모의 차이뿐이 아니다. 시루떡 시스터즈에게 없는 중요한 한 가지는 한기주의 자신감이다. 가진 자의 박력과 쿨한 태도를 그들은 영영 갖지 못할 것이다. 슬프지만 그게 현실이고 그게 내가 시루떡 시스터즈를 응원하는 이유다. 한기주의 성공은 부러울 뿐이지만 그들의 분투는 나를 감동시킨다. 채플린이 연기한 떠돌이 찰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단언한다. 시루떡 시스터즈는 우리 시대 진정한 안티히어로라고(다음주에 <두근두근 체인지> 관련 기획기사가 나올 예정이다).

‘김형태의 생각도감’이 내부 사정상 연재를 중단하게 됐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부탁드린다. 이번주엔 공연, 전시 안내, 개봉관표, 20자평 등 몇몇 지면을 손질했다. 앞으로 독자 여러분과 더 가까워지기 위한 지면 변화를 계속할 예정이다. 남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