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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교

나는 육교가 싫다. 코미디언 정준하의 말투를 흉내내면 육교에 관한 안 좋은 추억이 있어서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였다. 어느 겨울 눈이 많이 온 다음날, 학교 앞 육교에 쌓인 눈은 얼음으로 변해 있었다. 친구들과 하교하던 나는 육교 계단에서 두발이 붕 뜨는 순간을 경험했다. 모자 달린 점퍼를 입고 있었기에 뒤에 있던 친구가 내 모자를 낚아챘지만 소용없었다. 내 몸은 모자를 남겨둔 채 육교 맨 아래까지 단숨에 미끄러졌다. 쿵쿵쿵쿵, 계단참은 연신 등허리를 때렸고 나는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1초나 걸렸을까. 단숨에 바닥에 엉덩이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친구들은 “괜찮냐”며 걱정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프고 겁나고 창피해서. 육교와 나의 악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어쩌다 그랬는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근처다. 17년 전에 졸업한 그곳 풍경은 놀랄 만큼 바뀌었다. 서울 시내에서 손꼽히던 달동네였는데 지금은 사방에 아파트가 들어섰고 한옥이나 판자촌은 구경하기 힘든 곳이 됐다. 그럼 그 육교는? 불행히도 건재하다. 지난해 그 육교 앞에 표지판이 세워진 일이 있다. ‘붕괴 위험이 있으니 건너지 말라. 곧 보수공사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출근을 하려면 반드시 그 육교 앞을 지나야 하는 나는 내심 이 육교가 없어지길 기대했다. 그러나 육교는 건재했다. 표지판이 놓인 지 몇달이 지나도록 공사할 기미가 없었다. 사람들은 표지판을 무시하고 육교를 이용했다. 도리가 없었다. 그곳에서 길을 건널 유일한 방법이니까. 그 육교에 보수공사를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페인트칠조차 그대로인 상태로 어느 날 표지판만 사라졌다. 무서운 일이다.

어쩌다 그랬는지 <씨네21> 사무실이 있는 한겨레신문사 앞에도 육교가 하나 있다. 여기 와본 사람만 아는 일이지만 맛있는 밥을 먹자면 이 육교를 건너야 한다. 육교를 건너지 않고 갈 수 있는 회사 앞 음식점 대부분은 서울 시내에서 손꼽힐 만큼 맛이 없다(한겨레를 길들이려는 권력층의 음모가 아닌가 의심한 적도 있다). 따라서 식사 시간이 되면 언제나 딜레마에 빠진다. 맛있는 걸 먹으러 육교를 건너갈 것인가? 맛이 없어도 육교를 안 건너고 끼니를 때울 것인가? 뭐, 육교 건너는 정도를 못해서 그런 말을 하느냐고 하겠지만 집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는 사람들한테는 불만이 쌓일 만한 일이다. 겨울에 살얼음이 껴도 골치지만 요즘 같은 불볕 더위도 못지않게 끔찍하다. 달궈진 쇳덩어리에 발을 딛는 기분이다. 언젠가 TV를 보다 산에 함부로 길을 내면 야생동물들이 굶어죽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여기선 굶어죽지 않을 뿐 비슷한 형국이다. 육교는 이곳과 건너편을 잇는 길이 아니라 이곳과 건너편을 가르는 장애물이다.

나처럼 무심한 인간이 장애인의 입장을 생각해본 것도 육교 때문인지 모르겠다. 과연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은 어떡하라고 육교를 고집하는 것일까? 내가 사는 집과 다니는 직장, 그 앞에 있는 육교를 볼 때마다, 내가 장애인이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시는 교통체계 개편을 위해 수천억원을 쏟아넣었다는데 장애인을 위해서는 전시용 버스 몇대를 구입한 것밖에 없지 않은가. 길은 사람이 다니라고 만드는 것일 텐데 어째서 장애인이 다닐 수 없는 길이 수십년 변함이 없는 것인가. 아마 길을 만드는 사람이 문제일 것이다. 차가 우선이고 사람은 나중이고, 다리가 멀쩡한 사람이 우선이고 불편한 사람은 나중이라는 식이다. 개발독재의 흔적은 그렇게 아직 강력하다. 덧붙이자면 엘리베이터 없는 지하철역 또한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21세기가 됐지만 우리는 아직 길이 아닌 것을 길이라 우기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번주로 파병반대 캠페인을 마친다. 정부가 파병을 철회하지 않은 상황에서 깃발을 내리는 상황이 안타깝지만 영화인의 분노와 의지는 분명히 전달됐다고 믿는다. 아는 사람 중에 군인인 동생이 이라크로 가는 사람이 있다. 동생 생각만 하면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고 했다. 군에서 이라크에 가면 여러 가지 혜택을 준다고 해서 자원한 모양이다. 저들은 여전히 길이 아닌 것을 길이라 속이고 있다.

남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