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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라는 블록버스터

역시 올림픽이 멋지긴 멋지다. 4년마다 세계 최고의 자리를 놓고 다투는 대회니만치 하루하루 손에 땀을 쥐는 명승부가 이어졌다. 이번에도 한국은 평소 외면받던 종목들이 놀라운 투혼을 발휘했다. 유도, 탁구, 배드민턴, 양궁 등 금메달을 딴 종목들은 물론 역도, 체조, 하키, 핸드볼, 배구 등 숱한 비인기 종목에서 강호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언론의 레퍼토리는 4년 전이나 16년 전이나 다를 바 없다. 그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운동을 했고 어떤 좌절과 역경을 딛고 일어섰는가. 식상하고 진부한 얘기지만 그들의 성공스토리는 여전히 가슴을 파고든다. 왜일까? 아마 뻔한 이야기라도 진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4년에 한번 아주 잠깐 세상의 주인공이 된다. 이제 올림픽이 끝나면 그들은 퇴장한다. 앞으로 4년간 그들은 또다시 잠깐 주인공이 되는 그날을 위해 피와 땀을 흘릴 것이다. 올림픽이 멋지다면 그건 그들이 주인공인 유일한 무대이기 때문이다.

탁구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딴 순간 나도 모르게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김택수 코치는 얼마나 기뻤는지 유승민 선수를 안아주기 전에 자기가 먼저 유승민 선수의 품에 안겼다. 순간 눈물이 찔끔 나왔다. 번번이 중국의 벽에 막혀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던 그는 대표선발전에서 1위를 했지만 후배에게 길을 터주기위해 양보했다고 한다. 20년 가까이 한국 남자탁구를 대표하면서 묵묵히 자리를 지켰던 김택수는 그렇게 자신의 꿈을 이뤘다. 비록 자기가 딴 금메달이 아니라 해도 유승민보다 더 짜릿한 흥분과 환희에 젖었으리라. 김택수를 닮은 유승민의 플레이스타일을 보노라면 김택수의 한 없이 유승민의 금메달도 없었을 거라 짐작하게 된다. 올림픽은 축적된 고난의 시간들이 환희와 격정으로 분출하는 장이다.

우리를 흥분시키는 건 승리만이 아니다. 여자 마라톤 세계기록보유자인 폴라 래드클리프가 눈물을 쏟으며 경기를 포기하는 모습은 안타까웠다. 비록 4강에서 무릎을 꿇었지만 폐허가 된 조국에 희망을 안긴 이라크 축구팀은 자랑스럽다. 그들은 올림픽에 출전할 돈이 없어 친선경기 수익금과 헌금을 모았다고 한다. 44살 나이에 7번째 올림픽 메달에 도전한 멀린 오티는 그 집념만으로도 박수를 받을 만했다. 몸값으로 따지면 상대방의 100배가 넘는 선수로 구성된 미국 농구 드림팀이 푸에르토리코와 리투아니아에 진 것도 신선한 충격이다. 흔히 각본없는 드라마라는 말을 하지만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이 올림픽을 최고의 볼거리로 만든다. 더구나 스포츠에선 연기 못하는 배우가 하나도 없으니 감동과 전율이 배가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방송은 이런 극적 맥락을 잡기 위해 수십대의 카메라를 동원하고 적재적소에 땀방울과 눈물까지 포착하는 클로즈업을 사용한다.

이처럼 스포츠는 매우 극적인 볼거리이지만 그것만으로 스포츠의 매력을 설명할 순 없다. 올림픽에서 보듯 스포츠는 명백한 수치와 기록으로 이뤄진 세계다. 룰에 따라 점수를 매기거나 1분1초를 재는 방식으로 정확한 집계가 나온다. 명징하고 정확한 계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스포츠는 영화나 드라마와 완전히 다른 우주에 속한다. 당연히 우리가 발딛고 사는 현실도 스포츠와 다르다. 운동경기와 달리 세상은 모호하고 알 수 없는 곳이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만약 올림픽처럼 기록이 모든 걸 설명한다면 정치적 음모나 암투가 끼어들 여지는 많이 줄겠지만 대한민국에서 현재 내가 몇등이라는 것까지 드러날지 모른다. 아무튼 스포츠는 현실이나 영화가 흉내낼 수 없는 그 특성으로 우리를 울고 웃게 만든다.

체조 오심 사태에 화를 내는 것도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민족주의 감정도 있겠지만 스포츠의 세계를 지탱하는 믿음이 흔들린 데 대한 배신감도 적지 않다. 세상의 한켠에는 오직 기록과 수치만이 의미있는 분야가 존재해야 한다. 올림픽은 이런 전제 아래서 성립되는 초특급 블록버스터다.

남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