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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과 성인을 차별말라?
2001-06-27

“이런 저런 우려를 들어 등급보류를 내리고 잘라오면 허용하는, 이런 식의 운용은 사실상 검열이다.” 대마초 흡입장면이 많다는 이유로 등급보류 판정을 받았던 <오! 그레이스>의 수입사가 영화를 잘라와 ‘18살 이상 관람등급’을 받자,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한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는 등급판정을 담당하는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이다.

그의 말은 옳다. 한국 사정은 등급을 받기 싫으면 상업적 이익을 희생하고라도 등급없이 상영할 수 있는 택할 수 있는 다른 나라와 같지 않다. 등급매기기를 위원회가 유보라는 이름으로 거부하면, 해당영화가 택할 길은 두가지다. 상영을 포기하거나, 필름을 자르거나. <오! 그레이스>는 두번 째 방법을 택했다. 영화는 졸지에 남편을 잃고, 빈털털이가 된 여자가 우연찮게 ‘삼’(대마)을 기르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포석을 놓아둔다. 자기가 재배한 거니까, 직접 경험을 해봐야 된다고 여자는 생각하고, 대마초무해론을 주장하는 의사도 시험을 해보기로 한다. 그들이 대마를 피우는 장면, 장애에 계속 부딪히던 여자가 자기가 키우던 대마를 불살라 버리는데 온마을 사람들이 그 연기에 취해 환각에 빠지는 장면 등이 대체로 잘려나갔다. 잘린 시간은 2분30분 정도.

‘나도 대마초를 피우고 싶다’고 관객들을 충동질할까봐 등급위원회는 등급보류를 내렸다는 것이다. 18살 이상 관객들을 그 충동에서 보호하기 위해서! 정말 그 장면을 보니까 대마초를 피우고 싶더냐고, 온전한 필름으로 영화를 본 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요즘은 코미디프로그램에서조차 이런 식으로 여론조사를 하지 않던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들은 그 장면들에서 그런 자극은 받지 못했다 했다. 대신 대책없이 수렁에 빠진 한 여자 또는 인간이 우아함을, 품위를 회복하기까지 과정의 하나 쯤으로 받아들였다. 대마는 나이젤 콜 감독이 영화를 만든 영국에서도 재배가 불법이긴 마찬가지인데, 평소 친절하고 너그럽던 이웃 여자를 아끼던 온마을 사람들이 공모해서 여자의 불법을 감춰주고 덮어준다. 그 비현실성을 공동음모의 산출물이 빚어내는 몽롱한 환각과 등치시키는 건 보통관객에게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영상물등급위원들에게 이 성인동화같은 코미디의 완성도를 판단할 책임은 없다. 권한도, 의무도 없다. 그러나 최소한 영화의 맥락을 이해할 만한 상식은 필요하다. 아니, 책임은 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보호법은 있으되 18살 이상 성인보호법이 없는 것을 애통해하는 이들의 충정과 영화진흥법이 만나면, 또다른 <오! 그레이스>는 계속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