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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와 안성기

바야흐로 영화상 시상식 시즌이다. 청룡영화상 시상식은 미처 못 봤지만 지난 일요일에 TV에서 MBC 대한민국 영화대상 시상식은 봤다. 누가 상을 받을까 궁금한 점도 있었지만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행사인만큼 재미있는 볼거리도 있을 거 같았다.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다고 내가 관심있게 본 것 가운데 하나는 여자 배우들의 의상이었다. 볼거리라는 표현 때문에 여자 배우가 눈요깃감이냐고 항의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도리없다. 내가 영화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아름다운 배우들 때문이니까. 나는 영화를 보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여전히 멋진 배우를 보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이번엔 김혜수가 무슨 옷을 입을까, 그런 호기심이 무색하게 시상식장의 다른 여자 배우들 의상도 눈에 띄게 화려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 공효진의 의상은 ‘충격’이었다. 저런 의상은 김혜수 외엔 못 입는 줄 알았는데, 놀라웠다.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느냐? 전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우리나라도 파티의 문화, 쇼의 문화에 대해 깨달아가고 있는 것 같아 반가웠다(스스로 노출에 대해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배우들 의상이 이처럼 과감해진 건 순전히 김혜수의 공로다. 1996년 12월에 김혜수를 인터뷰한 기억이 난다. 그해 청룡영화상 시상식장에서 김혜수가 입은 의상은 가슴의 윤곽을 선명히 보여줘서 점잖은 분들을 혼비백산시켰다. 그 의상을 두고 여기저기서 말이 많다고 말하자 김혜수는 이렇게 답했다. “난 마돈나처럼 성해방론자도 아니고 치치올리나처럼 노출광도 아니에요. 배우니까, 영화인의 자리니까 그런건데, 배우가 옷 하나 입은 거 갖고 너무 예민하게 굴어. 더한 옷도 입어봤지만 뭐가 문제라는 거야. 도대체, 너무 후져, 정말 후져.”

배우가 연기를 잘해야지, 예쁘게 보이면 다냐, 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 분들에겐 연기냐 미모냐가 둘 중 하나만 택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아무튼 나는 김혜수처럼 파격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에게 정이 간다. 시상식 사회를 맡은 안성기도 그래서 좋다. 영화계 맏형 자리에 있는 배우지만 그는 배우가 할 일 가운데 하나가 대중을 웃게하는 광대의 기능이라는 점을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2000년 겨울, 혹한에 떨었던 <무사>의 중국 촬영현장에서 자신도 힘들지만 먼저 후배들을 다독이고 얼어붙은 현장 분위기를 농담으로 녹여주던 그의 모습이 새삼 떠올랐다. 그러나 안성기의 노력만으로 시상식 전체의 어색한 분위기가 완전히 해소되진 않았다. 고작 3회를 맞는 영화상이라 어쩔 수 없는 점이 있겠지만 아직은 TV 생중계에 걸맞는 준비가 부족하다는 인상이다. 농담이 필요할 때 침묵이 흐르고, 미리 제작한 영상도 재치있는 편은 아니었다.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을 본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TV 생중계를 하는 이런 영화상 시상식에는 치밀한 각본이 있어야 한다. 아카데미나 MTV 영화상의 경우, 수상결과 이전에 쇼프로그램으로서 대단한 완성도를 지녔다는 점이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킨 비결일 것이다.

아마 영화상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모두 권위있는 상이 되길 바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희망사항은 권위있는 영화상 못지않게 즐거운 영화상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멋진 배우들이 화려하게 등장하고 거기 어울리는 쇼가 있고 웃음과 감동이 있는 무대. 김혜수와 안성기에만 의지하지 말고 이왕 하는 거 다른 배우들도 쟁반노래방 나가는 심정으로 대중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이벤트.

물론 그나마 이정도 발전한 게 어디냐 싶기도 하다. 김혜수와 안성기가 있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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