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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조니 뎁과 디카프리오

<길버트 그레이프>

“관계가 별로 없다고? 그럼 우리가 관계를 맺어주지 뭐?” 매주 열리는 <씨네21> 기획회의에서 내가 자주 뱉는 말이다. 별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나 사건이라도 관점만 제대로 잡으면 굴비 엮듯 엮어서 흥미로운 기획기사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번번이 이런 식이다보니 “관계를 맺어주자”는 말만 나오면 기자들 낯빛이 변한다. “어이구, 저 인간, 또 저런다 또!” 하는 표정이다. 조니 뎁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한 묶음으로 특집을 만들자는 얘기도 그러다 시작됐다. 하지만 이번 경우가 뜬금없는 한 묶음이 아니란 걸 독자 여러분도 금방 눈치챌 것이다. 두 배우가 함께 나왔던 1993년작 <길버트 그레이프>를 봤다면 틀림없이.

<길버트 그레이프>는 내가 시사회라는 걸 처음 경험한 영화였다. 막 제대를 하고 백수였던 1994년 봄, 어디서 시간을 때우나 배회하다가 동숭씨네마텍 개관 기념 시사회에 떠밀리듯 들어갔다. 아직 조니 뎁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잘 몰랐던 시절, 영화를 보고 나와서야 제목이 <길버트 그레이프>라는 걸 알았던 영화지만, 보는 동안 가슴이 아팠고 눈물이 흘렀다. 아직 군에서 자른 머리가 다 자라지 않은 탓이었을까? 나는 앞으로 온전히 내 힘으로 감당해야 할 사회가 두려웠고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아마 길버트도 그런 심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 자의 표정은 뭔가? 어찌 저리 태평한 거지? 마음 깊은 곳에 견딜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지만 조니 뎁에겐 우울해 죽을 것 같은 표정이 없었다. 그건 그가 터득한 불행에 대한 방어기제처럼 보였다. 무심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고통이 그에게 달관의 표정을 가르쳤을 것이다. 반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어니는 가족의 불행이 한몸에 응집된 듯 격렬했다. 그는 더이상 세상과 대화하지 않으려 했고 높은 탑에 올라가 언제라도 새처럼 날아가려 했다. 한순간 길버트와 어니가 같은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 어니의 육체적 장애는 길버트의 심리적 장애와 같은 말이 아닐까? 평화로운 얼굴 뒤로 지옥을 숨겨둔 청년과 고통스런 얼굴 뒤에 평화로운 내면을 간직한 소년이 있다. 어느 쪽이든 순탄한 삶은 아니지만 영화는 그들의 미래를 격려했다. “우린 어디로든 갈 수 있어.” 엉뚱하지만 난 그 말에 용기를 얻었다.

<길버트 그레이프>는 어디로 갈지 감을 잡지 못했던 내 청춘의 마지막 자락에서 마주친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얼마 동안 길버트와 어니의 앞날을 염려했던 기억이 난다. 그들의 고향보다 덜할지라도 바깥 세상도 장밋빛은 아닐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그래도 떠날 때는 떠나야 한다. 영화는 그렇게 말했고 성장의 관문엔 언제나 이별의 아픔이 있다. 길버트와 어니처럼 조니 뎁과 디카프리오도 각자의 길을 갔다. 이번호 특집을 보면서 문득 조니 뎁과 디카프리오처럼 길버트와 어니도 잘 지내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번 기사는 길버트와 어니의 미래를 걱정했던 사람들을 위한 위로일지 모른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해본다. 오겡끼데스까? 와따시와 겡끼데쓰.

PS. 이번호에는 <그때 그 사람들>의 세 장면을 삭제하라는 법원 결정에 대한 이야기가 요소요소 숨어 있다. 같은 말을 너무 반복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대다수 필자들이 그냥 조용히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 탓일 것이다. 당장 나부터도 법원 결정을 비난하는 말로 이 지면을 채우려다 겨우 참는다. 씩~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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