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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문학아, 말해다오
2005-07-22

가네시로 가즈키

“<씨네21>이 아니라 <북21>이 어울리겠는걸.” 이번주 <씨네21>을 보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이번호엔 유난히 소설과 소설가에 대한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특집으로 작가와 감독의 대화를 실은 것에서 시작해서 최근 일본에서 개봉한 <플라이, 대디, 플라이>의 원작자 가네시로 가즈키의 인터뷰를 거쳐 포커스 지면엔 올 여름에 읽을 만한 신작 추리소설들이 선보인다. 갑자기 소설 이야기가 많아진 것은, 한국영화의 위기에 출구가 없는지 되짚어보자는 제안이다, 한국영화가 잃어버린 서사의 즐거움을 되찾자는 선언이다, 지난 6개월간 극비리에 추진해온 <씨네21>의 안중근 계획이다, 라고 말하면 좋겠는데, 사실 그렇게 굉장한 의도를 갖고 추진한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하다보니 우연히 그렇게 됐다. 각각의 특집과 기획엔 분명한 이유가 있었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들어가게 될 줄은 예상을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만들어놓고 보니 근사하다. 특집, 기획, 포커스로 이어지는 기사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귀담아들을 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교훈도 있고 감동도 있고 무엇보다 해학이 있다. 진짜 이야기꾼들인 소설가, 만화가들의 구수한 입담이 장난이 아닌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가네시로 가즈키가 궁금했더랬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갖고 있는 다소 유아적인 세계관이 어찌하여 내 맘을 흔드는지 알고 싶었다. 김영희 기자의 인터뷰에서 가네시로는 일종의 해답을 들려준다. “난 영화엔 ‘엔터테인먼트의 왕도’랄까 그런 게 필요하다고 본다. 그냥 일상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사실 난 이런 일본영화가 지긋지긋하다!- 리얼한 일상에 숨어 있는 기적 같은 걸 끌어내는 것 말이다. 역에 들어오는 기차(뤼미에르 형제)나 버스터 키튼 같은 연기를 보고 즐거워하는 게 영화의 원점 아닌가. 인텔리들이 그걸 자기네 장난감처럼 제멋대로 어렵게 만들어버리며 그 원점이 잊혀지는 것 같다.” 가네시로의 소설엔 분명 원초적인 엔터테인먼트의 정신이 있다.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나 홍콩 누아르의 갱스터와 다른, 매우 현실적인 아웃사이더의 에너지를 그의 소설을 본 사람이라면 잊지 못할 것이다.

말하자면 이번주 <씨네21>의 간판은 ‘영화와 문학의 대화’다. 영화의 뿌리가 서사의 전통에 서 있는 한 이런 시도는 당연하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일 것이다. 사실 영화라는 장르는 다른 예술분야에서 보면 좀 얄미운 존재다. 문학, 음악, 미술, 연극 등이 수천년 쌓아온 것을 신참 예술인 영화는 슬쩍 가져다 마치 제 것인 양 써먹고 대중의 환호를 독차지하곤 했다. 거꾸로 보면 영화에서 자기만의 것을 찾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영화만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한 감독은 여전히 극소수에 불과하다. 기생하는 삶이 불가피하다는 걸 인정한다면 영화는 다른 예술 장르의 대가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어야 한다. 이번엔 소설가, 만화가들의 말을 들었지만 다음엔 또 다른 예술가들에게 충고와 조언과 비판을 들어야 할 것이다. 소설가 김영하의 표현을 빌리면 파도야 말해다오 해도 파도는 아무 말을 안 하지만, 문학아 말해다오, 미술아 말해다오, 음악아 말해다오 하면 참 많은 이야기를 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번호의 부제는 ‘문학아 말해다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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