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편집장이독자에게
[편집장이 독자에게] 배우가 되는 법

어느 날 지하철 통로를 걷는데 커다란 광고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당신도 스타가 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연기학원 광고였다. 막연히 스타를 동경하는 10대라면 나도 한번, 하고 혹할 만했다. 며칠 전 누군가는 이 광고를 보고 연기학원의 문을 두드렸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래서 아버지의 꾸지람을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 순간, 배우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기사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스타가 된 배우나 주목받는 조연배우가 아니라 무명의 배우 지망생들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박혜명 기자는 한달여 동안 이번 취재에 매달렸다. 수많은 배우 지망생을 만났고 그들이 연기수업하는 현장을 쫓아다녔다. 이번 특집기사엔 배우 지망생들의 땀과 박혜명 기자의 땀이 함께 느껴질 것이다. 기사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사실 배우가 되는 데 왕도는 없다. 연기학원을 다니건 연극영화과를 다니건 방송사 공채에 합격을 하건 스타가 되는 배우보다 이름없이 잊혀지는 사람들의 수가 훨씬 많다. 열심히 노력하면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출중한 연기력을 갖췄더라도 오디션에서 연기 경험 전혀 없는 가수한테 밀리는 것이 이 세계에선 비일비재하다. 약육강식의 정글이라는 표현이 달리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마 쇼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유일한 법칙이 있다면 희소성이 아닐까. 선천적인 외모이든 후천적인 연기력이든 남다른 무언가를 발휘하지 않는 한 실업 상태를 면하기 어렵다. 최근 스크린쿼터 투쟁을 하는 배우들을 향해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자들이 정부의 보호까지 요구한다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었는데 실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일 것이다. 쿼터가 있든 없든 배우들만큼 무한경쟁에 노출된 직업은 찾기 힘들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법조항조차 배우들에겐 해당되지 않는 얘기인 것이다.

이번 기사를 보고 나니 오래전 신인배우 시절을 취재했던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두편의 영화에 나온 뒤 소식이 없는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직 배우의 꿈을 버리지 못한 채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걸까? 전업을 해서 완전히 다른 일을 하며 살고 있을까? 또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배우에 관한 기사들은 어쩔 수 없이 90% 이상 그들의 성공 스토리다. 이러저러한 고생을 했지만 결국 이렇게 잘됐다는. 거꾸로 배우 지망생 모모씨는 이러저러한 고생을 했지만 이름을 알릴 기회를 얻지 못하고 결국 고생만 하다 폐인이 됐다는 기사는 아무도 쓰지 않는다. 어둠에서 시작해 어둠으로 끝나는 기사는 취재대상도 원치 않고 독자도 원치 않기 때문이리라. 스타산업은 그렇게 늘 반짝여야 굴러가는 산업이다.

온갖 위험요소에도 배우 지망생은 넘치고 흥행을 보증하는 스타는 늘 부족하다. 아마 그 불균형이 이 업계의 단점이자 매력일 것이다. 영화의 흥행처럼 이 분야도 도박을 닮았다. 도박과 다른 점이 있다면 준비된 배우를 만드는 체계적 시스템이 있다는 것 정도다. 60∼70년대 그 시스템은 영화인들이 자주 다니는 충무로의 몇몇 다방과 극단 정도였지만 지금은 방송사와 매니지먼트사, 여러 교육기관과 극단들로 대체됐다. 그런다고 배우 되는 자격증 시험이 생길 리 없으니 유일한 길은 기회가 오면 잡을 수 있는 재능과 노력과 행운뿐이다. 노력은 인간의 것이나 재능과 행운은 신의 것이니 그들에게 신성(神性)을 느끼는 것도 자연스런 일 같다.

PS. 그간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늦었지만 소개하자면 최하나, 정재혁 두 사람이 <씨네21> 수습기자로 들어왔다. 배우 오디션 못지않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공채 시험을 통해 입사했다. 지난 1년간 뉴욕에서 견문을 넓힌 백은하 기자도 돌아왔다. <씨네21> 홈페이지 TV 섹션을 맡아 <씨네21>의 영역을 넓히는 일을 맡을 것이다. 한동안 스탭으로 일했던 김유진씨도 다음주부터 편집기자로 합류할 예정이다. <ME> 기자로 일했던 권민성씨의 후임이다. 이미 등단한 소설가인 권민성씨는 장편소설 집필을 위한 시간을 더 갖기로 했다. 인력 변동은 디자인팀에도 있다. 자체 디자인팀을 만들기로 결정해서 이번호에 채용공고를 냈다. 영화잡지를 사랑하는 편집디자이너 여러분의 뜨거운 관심을 기대한다. 아울러 그동안 <씨네21> 디자인을 위해 애써준 디자인회사 디자인이즈 여러분께도 감사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