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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즐거운 음모론, 슬픈 음모론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둥근 지붕이 열리면 로봇 태권V가 나온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태권V를 숨겨놓은 게 아니라면 저렇게 넓은 곳에 돔 형태의 저런 건물을 지을 리가 없잖아.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고 모두 맞아, 맞아, 고개를 끄덕였다. 이소룡이 살아 있다는 소문도 꽤 그럴싸하게 들렸다. 무술고수 수십명과 싸움을 하다 여러 군데 칼에 찔렸지만 적들을 모두 해치우고 마침내 속세를 떠나 은둔생활에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영화 속에서 불사신이었던 이소룡을 본 아이들은 이번에도 맞아, 맞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돌아보면 어처구니없지만 동심은 그런 음모론에 이끌렸다. 세상을 잘 몰랐을 때 할 수 있는 상상이었다.

그에 비해 오늘날 음모론은 대단히 정교하고 파괴력도 높다. 이런 계통의 기념비로 꼽힐 만한 <X파일>은 세련된 음모론 덕분에 미국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미궁에 빠진 세계사의 100대 음모론>이라는 책에서 저자 데이비드 사우스웰은 이렇게 말한다. “음모론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대한 반작용일 수 있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것을 다 알기란 쉽지 않다. 또 이 세상에는 무섭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넘쳐나는데 우리는 무기력하게도 그것들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음모론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설명해주는 그럴듯한 배후의 이야기를 제공해준다. 따라서 음모의 전말을 자세히 알게 되면 우리의 무기력함은 줄어들고, 우리는 음흉한 모함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는 순진한 희생자가 아니라 비밀의 내막을 공유하는 내부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할리우드가 음모론의 온상이 된 것은 자연스럽다. 마침내 음모의 실체가 드러나는 할리우드식 결말은 무지와 불안에 떨던 관객을 진정시키고 안심시킨다.

<다빈치 코드>는 무척 잘 읽히는 초·중반부에 비해 결말이 초라하다. 그래도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소설이 전제로 삼은 음모론이 기독교에 바탕을 둔 서구 문명 전체를 대상으로 삼을 만큼 폭넓기 때문이 아닐까. 9·11 테러를 목격한 요즘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자면 음모론도 수천년 역사를 뒤엎을 정도로 블록버스터급이 돼야 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자극할 수 있는가, 라는 측면에서 <다빈치 코드>는 영화로도 꽤 성공적인 것 같다. 칸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한 뒤 나온 혹평이 무색하게 상영반대운동이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독교 단체의 상영반대운동이 영화사의 마케팅 전략에 따른 것 아니냐는 음모론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빈치 코드>

<다빈치 코드> 사태를 보노라면 음모론을 엔터테인먼트로 잘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미국 대중문화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반면 한국에서 탄생한 음모론은 엔터테인먼트가 되기 전에 진상조사위원회에 속하는 일이 되곤 한다. 나와 비슷한 세대라면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이 음모론으로 떠돌던 시대를 기억할 것이다. 여자의 가슴이 잘렸고 아이가 생매장됐고 수천명이 죽었다는 소문들. 그중 많은 부분이 사실임을 알면서 느꼈던 충격은 한국사의 음모론이 쉽게 엔터테인먼트로 번안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때마침 오늘은 5월18일. 광주민주화운동 26주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는 음모론을 엔터테인먼트로 받아들이는 시대를 맞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은 더 좋은 세상이 왔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거꾸로 음모론을 순수한 엔터테인먼트로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야말로 외국인들에게 한국영화의 독창성으로 인지되고 있는 것일까. 아무튼 할리우드와 달리 우리에게 음모론은 그저 즐기면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최근 평택 시위를 빨갱이들의 음모라 말하는 어떤 신문을 보노라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저들은 광주의 시위를 공산주의자의 음모라고 말했던 그 입을 무려 26년간 지치지도 않고 놀리고 있다. 혹시 이 모든 게 우리의 상상력을 빈곤하게 만들려는 음모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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