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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에서 사람으로
2001-09-21

<씨네21> 320호는 지면개편호다.

김지운 감독과 문화평론가 정윤수씨, 김봉석 기자가 각각 ‘고별사’를 발표했기 때문에 뭔가 바뀌는가보다, 짐작하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칼럼 ‘숏컷’을 끝내고, 김봉석 기자는 소설가 김영하씨와 격주로 ‘이창’을 통해 독자 여러분을 만나게 된다. 민동현 감독과 제도교육의 틀을 스스로 깨고 나와 이제는 영화학도가 된 김현진씨의 발랄한 비디오체험기를 부활한 ‘오! 컬트’에서 들려준다. 영화의 뿌리를 비춰보는 자리를, 흔한 말로 급격한 매체환경의 변화를 겪고 있는 지금, 조금 넓혔다. 촬영감독열전이 그것이다. 영화를 영화이게 만드는 첫번째 기본요소 영상을 포착하는 카메라의 역할을 우리는 너무 소홀히 하지 않았나하고 반성했다.

세기의 카메라 그 첫번째로 코폴라와 베르톨루치, 사우라의 세계를 함께 축조해온 비토리오 스토라로로 이 순례의 문을 연다. 영화읽기의 새연재 ‘거장 예감 신세기 시네아스트’는 미래를 향해 낸 창이라고 생각해주시기 바란다. 시대정신을 흡수하고 혁신해 영화를 창조해내는 사람들 속에서 때로 진화의 흐름을 추월하는 기적이 발생한다. 조종국, 심재명 두 프로듀서가 써나갈 충무로 일기와 함께, 우리들의 가난한 시네마테크 소식들을 전하는 아주 작은 고정난을 만들었다. 이것도 뒤늦은 반성의 표시가 아닌가 싶다. 너무 좁아서 부끄럽긴 하지만, 이 쪽지로는 감당할 수 없을만큼 시네마테크의 활성화가 이루어지면 좋겠다.

<씨네21>이 변화라 부르기도 민망한 작은 변화를 준비하는 동안, 우리 지구에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추상적인 숫자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한다고 누군가는 말했는데, 꼭 나를 두고 한 말같다. 세계의 분쟁지역에서 매일매일 희생되는 사람의 숫자,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숫자, 직장을 잃고 떠도는 이들의 숫자, 같은 일터에서 다른 임금과 처우를 감수하다 언제 내쳐질 지 알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숫자…. 카메라는 그 숫자를 살아 있는 현실로 치환해주기도 하고, 지워버리기도 한다.

이라크 상공에서 포탄의 섬광을 보며 “크리스마스 트리같다”던 비행사의 편에서는 그 아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뉴욕, 거대한 빌딩의 붕괴장면을 포착한 카메라가 현장 속으로 더 파고들었다면, 그 화면을 ‘영화속 한 장면’ 같다고, 스펙타클로 소비하는 일들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 먼곳의 ‘숫자’에서 사람을 느끼게 만드는 일, 그것이 영화와 ‘생각이 있는’ 영화잡지의 일 가운데 하나인 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