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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꼴찌 응원하기

서울 서문여고에는 인유반이라 불리는 학급이 있단다. K리그 최하위팀 인천유나이티드FC(인유)를 응원하는 바람에 붙여진 이름이다. 다큐멘터리 <비상>에서 인유반의 한 소녀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1등만 원하고 그런 편견으로 세상을 보잖아요. 축구를 해도 이천수, 박주영, 뭐 그런 스타들만 찾고. 하지만 그들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어떻게 꼴찌팀을 응원하는 학급이 생겼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인유반의 담임선생님은 인천팀의 참담한 성적을 오히려 즐기는 듯 보인다. 아마도 그는 학생들에게 축구에 대한 열광이 아니라 꼴찌를 응원하는 마음을 가르치고 싶었던 것 같다. 뒤처졌다고 기죽지 말자는 무언의 교육. <비상>을 보면서 저 반의 아이들은 좋은 선생님을 둬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쟁에서 이기는 법만 가르치는 세상에서 경쟁에서 지고 있을 때 다독이는 법을 가르치는 일은 참으로 귀하게 느껴진다.

영화에서 꼴찌팀을 이끄는 장외룡 감독도 그런 선생님처럼 보인다. 전년도 2승밖에 못 거둔 팀의 선수를 모아놓고 그는 칠판에 이렇게 쓴다. 7승3무2패. 선수들은 모두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눈빛을 보인다. 국가대표 선수도, 유명한 외국 용병도 없는 가난한 시민구단, 전용구장이 없어 3시간 연습을 위해 5시간씩 버스로 이동해야 하는 선수들, 원래 소속팀에서 버림받고 축구를 그만둘까 고민했던 그들이 과연 챔피언에 도전할 수 있을까. <공포의 외인구단> 같은 만화에서나 가능한 일들이 하나둘 현실이 될 때 이 다큐멘터리는 극영화를 뛰어넘는 희열을 맛보게 해준다. 인상적인 대목은 역시 장외룡 감독의 용병술. 해봐야 진다는 생각을 가진 선수들에게 그는 못해도 잘했다고 칭찬한다.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 5 대 1로 대패를 당한 다음에도 그는 화를 내지 않는다. “야, 나는 5 대 0으로 끝나나 했는데 마지막에 한골 넣었잖아. 그게 저들에게 얼마나 뼈아픈 실점이 될지 2차전에서 보여주자고.” 져도 고개를 떨구지 말라는 그 가르침이 꼴찌팀의 기적을 만든 동력이 아니었을까.

최근 아시안게임에서 야구, 농구, 축구가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두자 언론이 일제히 들고일어났다. 배부른 프로 선수들이라 몸만 사리고 형편없는 실력을 보여줬다며 음지에서 금메달을 일궈낸 비인기 종목 선수들의 정신력을 본받으라며 성화다. 100% 틀린 말은 아니라도 다들 한목소리를 내니까 듣기 싫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국가대항전에선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논리가 아닌가 싶어 꺼림칙하기도 하거니와 그나마 비인기 종목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도 축구, 농구, 야구가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더구나 <비상>을 보면 정규리그를 마치고 그나마 쉴 수 있는 시간에 국가대표까지 하는 선수들이 너무 불쌍하다. <비상>에서 인천팀의 중앙수비수 임중용 선수는 리그 마지막에 시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몇 개월 쉬지 않고 게임에 나간 탓에 쌓인 피로가 시력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이번 아시안게임에 나간 축구나 야구선수들도 정규리그의 피로와 부상을 그대로 안고 간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결과론이지만 일본 야구처럼 아마추어팀을 보내는 것도 괜찮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수능시험을 끝내고 풀이 죽은 친구들도 적지 않을 텐데 <비상>을 한번 보라고 권하고 싶다. 세상엔 1등이 아니어서 맛볼 수 있는 기쁨도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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