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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디 워>, 수출지상주의의 문제

<디 워>의 미국 흥행결과가 나왔다. 첫 주말 박스오피스 5위로 출발한 <디 워>는 온갖 혹평에 난타당하며 개봉 2주차 주말 10위, 최종 극장 수입 1천만달러 수준으로 예상된다. 2천개 넘는 스크린에서 개봉하면서 200억원 가까운 마케팅비를 썼을 것이라고 보면 DVD, 방송 등 2차 판권을 합쳐도 돈을 벌었다고 말하긴 힘들어 보인다. 한국에서 800만명 넘는 관객을 동원했지만 투자된 제작비를 생각하면 아직 손익분기점의 고지에 다다르지 못했다. 영화는 상품이며 수출만이 살길이라고 외친 심형래 감독의 논리에 따르더라도 외화벌이에 성공한 상품이 되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미국에서 개봉해서 이 정도면 대단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디 워> 이전까지 한국영화로 미국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번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분명하다. IMDb에 따르면 <봄 여름…>은 단 6개 극장에서 개봉한 뒤 7개월간 장기상영을 하며 238만달러 넘는 극장 수입을 기록했다. 개봉관 수에 비례해서 마케팅비도 그만큼 적게 들였으니 한국영화로는 이례적인 성공이었다. 국내에서 흥행에 실패하고 언론의 조명을 못 받았어도, 감독이 수출만이 살길이라고 떠들지 않아도, CG로 만든 괴수가 나오거나 엄청난 제작비를 들이지 않았어도, 미국에서 실제로 많은 돈을 번 한국영화는 있다. 순전히 경제성의 측면만 놓고 봐도 지금은 <디 워>의 수출지상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때이다.

<디 워>의 지지자들은 심형래 감독의 다음 영화에서 훨씬 좋은 미국 흥행성적을 기대하겠지만 <디 워>에 대한 반응을 보면 그것도 쉽지 않다. 평론가들의 혹평도 혹평이지만 일반 관객에게도 상당한 배신감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화제가 된 호러블 보이 유튜브 동영상이나 미국 관객의 관람평을 보면 “예고편에 속았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미국에서 극장 개봉하는 첫 영화라 심형래 감독에 대한 어떤 선입견도 없었던 <디 워>와 달리 심형래 감독의 다음 영화가 개봉할 때는 미국 관객도 <디 워>의 감독이 만들었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표할 가능성이 크다. “영화에 스타를 기용하면 스타의 명성을 함께 사는 것이 된다”는 호러블 보이의 말대로 심형래 감독은 명성을 얻었다. 그것이 B급영화로 유명한 우웨 볼만큼 좋지 않는 명성이라는 것이 문제다. 상황파악을 제대로 한다면 심형래 감독은 선택의 기로에 있는 셈이다. 지금껏 해온 대로 더 많은 제작비를 들여 CG에만 몰두하는 길을 택한다면 <디 워>보다 나은 수출상품을 만드는 일은 요원할 것이다. 반대로 이번엔 진짜 마음을 고쳐먹고 <반지의 제왕>의 이야기가 얼마나 훌륭한지 꼼꼼히 살펴보고 최소한 <트랜스포머>와 <디 워>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는 길이 있다. 심형래 감독이 후자를 택하기를 바란다.

오래전부터 <쥬라기 공원>이 벌어들인 돈이 한국의 어느 자동차회사 수출액과 맞먹는다는 얘기가 한국영화을 짓누르는 강박관념이었다. 영화의 산업적 가능성에 주목하라는 의미겠으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쥬라기 공원>은 할리우드의 시스템으로 만든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라는 사실을 잊곤 했다. 심형래 감독이 걸어온 방향은 스필버그의 연출력에 신경쓰지 않고 자동차 수출액에만 몰두한 길처럼 보인다. 심형래는 스필버그가 될 수 있는가? 혹은 심형래는 스필버그에게 무엇을 배울 것인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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