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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2007 대선 감상

대통령 당선자가 정해졌다. 말 많고 탈 많던 그분이 되셨고 머지않아 운하의 첫삽을 뜰 것이다(Oh! No!). 역대 최악의 투표율이라고 하지만 60% 넘는 투표율에 1천만 넘는 표로 당선됐으니 국민이 그분을 원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영화로 치면 작품성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아도 1천만 관객이 몰려드는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그분은 이번 영화에서 ‘정권교체’와 ‘경제’라는 두 마리 이무기의 화려한 변신을 보여줬다. 청계천에서 태어난 이무기들은 몇번 꿈틀거리더니 한반도 대운하를 칭칭 휘감은 두 마리 용이 되었다.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이 그래서 생긴 걸까. 놀라운 특수효과에 다들 할리우드 못지않은 기술력이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물론 이 영화의 치명적 약점은 서사의 미스터리가 끝까지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BBK라 부른 미스터리 플롯의 심각한 결함에 대해 영화깨나 본다는 사람들은 모두 목청 높여 나무랐다. 하지만 그분의 영화는 굉장한 볼거리가 있다는 게 중요하지 미스터리 따위 잊어도 된다는 것이 다수의견이었다. 할리우드만 봐도 <트랜스포머>를, 조지 부시의 영화를 작품성 때문에 보러 가는 건 아니지 않냐는 것이다.

스토리는 신파지만 막판 반전이 끝까지 긴장하게 만들었던 전작에 비해 5년 만에 나온 이번 영화엔 확실히 심금을 울리는 장면이 없었다. 그저 친북좌파니 수구꼴통이니 하는 원색적인 비방 클리셰가 관객에게 잘 먹히지 않는다는 걸 간파한 것 정도가 영리한 선택이라 할 만하다. 그래도 1천만 관객을 동원한 것은 그만큼 현실에 대한 분노가 크다는 방증이다. “이게 다 놈현 탓”이라는 말이 영화가 나오기도 전에 명대사로 회자된 데는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이번 영화를 보면서 다소 충격적이라고 느꼈던 순간이 있다. 하나는 부산국제영화제 장면이다. 개막식에 등장한 정치인들, 거기에 이명박, 정동영이 있는 것은 그렇다치고 권영길이 끼어 있던 이유를 지금도 알 수 없다. 권영길은 그 순간 민노당이라는 한국사회에서 그나마 지분을 차지한 진보정당의 대표자가 아니라 그냥 대통령병에 걸린 사람 가운데 하나처럼 보였다. 오버도 이런 오버가 있나? 그는 원래 뚜렷한 정치적인 입장을 드러내는 믿음직한 조연에 해당했다. 한-미 FTA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고발해야 할 역할인 그가 엉뚱한 장면에 나와 있는 모습은 전형적인 NG컷에 해당한다. 이런 장면을 편집해봐야 영화가 제대로 붙을 리 없다. 그런가하면 정동영은 본인은 메소드 연기라고 생각했겠지만 지나친 신파 연기를 선보였다.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마찬가지로 감동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법이다. 그가 “(나도) 종부세 인하하겠다”는 발언을 했을 때 그것은 그분과 대립할 이유가 없다는 항복선언이었다. 두 주인공의 팽팽한 대결을 기대했던 관객은 이미 그 장면에서 자리를 떴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영화의 코믹 카메오 허경영에겐 그저 애썼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재미있는 애드리브는 참 많았는데 다시 봐도 재미있을지는 모르겠다.

실망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분의 시대가 영화의 종말을 의미하진 않을 것이다. 이번에 1천만 관객이 들었지만 아무리 별을 후하게 줘도 별 두개를 넘기 힘든 영화였음을 아시리라. 이벤트와 마케팅의 힘으로 성공한 영화가 속편이나 아류작을 양산할 경우 계속 흥행에 성공할 리는 없다. 환불해달라는 아우성을 듣지 않게 후속 시나리오를 제대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러고보면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아니 정작 흥미로운 대반전이 기다리는 5부작이 이제 막 1편을 공개한 것은 아닐까?

P.S. 이번호에 실린 올해의 영화(외화 포함)를 2008년 1월2일부터 하이퍼텍 나다에서 상영하기로 했다. 시간표 확인하시고 놓친 영화들 챙겨보시길. 송년호를 만들고나니 정말 2007년이 지나간 게 실감난다. 독자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 앤드 해피 뉴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