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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이후
2001-03-06

한국영화에서 프로듀서라는 존재를 처음 알린 제1세대가 이태원, 황기성씨를 꼽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에서 영화를 시작한 황기성씨는 ‘황기성 사단’이란 자신의 영화사를 만든 뒤, <안개기둥>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같은 초창기 여성주의 영화에서부터 멜로, 로맨틱 코미디 등의 장르영화들을 매만져 왔다. 태흥영화사의 이태원 대표는 이제 임권택 감독, 하면 맨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되었다. 배급과 극장업에서 먼저 자리를 잡았지만, 임권택 감독과 만난 뒤로 상업적 목표보다 작가와 동행하는 명예를 선택했다. 영화가 어느새 새로운 자본증식의 수단인 ‘콘텐츠’가 된 벤처의 시대, 문화‘산업’의 시대에 이건 참 아름답고 낭만적인 시대착오라 할 밖에.

프로듀서의 전문성이 영화의 기획부터 배급까지, 모든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는데 생각이 미친 건 겨우 10년 남짓한 일이다. 연출과 시나리오, 촬영 등과 함께 영화교육 과정에 독립적 영역으로 마련해 놓은 외국과 달리, 대학교육에서도 프로덕션 전공은 따로 없었지만, 운동하듯 뛰어든 영화 속에서 자연스러운 분업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전문프로듀서의 영역은 충무로 토착자본이 물러나고, 새로운 자본이 빈자리를 채우는 변화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연출분야에서 먼저 이루어진 급격한 세대교체를 이곳에서도 목격할 수 있었다. 새세대 감독들과 결합한 이들은 또 절대다수 젊은이로 구성된 관객들에게 쉽게 교감할 수 있었다. 정체됐던 한국영화가 이렇듯 압축적인 진화, 또는 돌연변이를 겪었기에 그 흐름에서 밀려난 ‘아버지’들과 새로운 세대 사이의 단절은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 그것이 아직도 완전 소화되지 않은 갈등의 원인 가운데 하나다. 어쨌든, 그 2세대 제작자들이 다양한 장르영화를 시도했건, 금기가 되어온 소재들을 향해 돌진했건 집단적인 동력을 만들어낸 것은 사실이다.

다시, 새로운 프로듀서들이 그들의 뒤를 잇는다.

그들에게 임의로 3세대 프로듀서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형’ 또는 ‘누이’ 세대가 개척해놓은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특집 ‘제3세대 프로듀서가 온다’에서 우선7명의 대표주자들을 먼저 만났다. 채록된 발언이 누군가에게는 영화의 미래를 미리보는 단서가 될 수 있겠고, 누군가에게는 미래의 영화로 들어가는 안내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