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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 챔피언, 알리
2002-01-11

편집장

기억력이 망가지지 않았다면, 어떤 인터뷰에서 소설가 박경리 선생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를 묻는 질문에 “권투와 마라톤”이라고 답했던 것 같다. <시장과 전장>과 <토지>를 읽고나서 더할 수 없는 존경심을 품고 있던 내게 그 대답은 이상하게 심금을 울렸다. 없다고 해도 좋을만큼 극히 단순한 룰에다 몸의 가장 단순한 기능만으로 승부하는 그 원시적인 스포츠를, 특히 남자들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그 무식한 권투를 좋아하시다니, 역시 남다르시군요, 그렇게 중얼거렸던 것 같다.

오늘의 20대 독자들에겐 실감이 나지 않을 테지만, 우리의 스포츠 영웅은 안정환이나 허재가 아니라, 홍수환과 유제두였다. 홍수환의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는 근 10년간 유행어였고, 유제두가 일본의 세계챔피언 와지마 고이치에게서 타이틀을 빼앗았을 때, 한 신문은 두면에 걸쳐서 내가 본 가장 큰(미국 테러 때보다 두배쯤 큰) 글씨로 ‘와지마, 다운, 다운, 다운’이란 제목을 달았다. 중학교 때 수학 선생의 별명은 와지마였는데(외모가 유사했다), 그는 타이틀전이 벌어진 다음날이면, 수업을 잊고 경기해설로 한 시간을 보냈다.

박경리 선생의 인터뷰를 본 건 그런 권투의 영광이 거의 사라질 무렵이었다. 잊혀진 원시성, 거세된 야성의 울혈 같은 게 느껴져(그의 소설에도 그런 요소가 있다) 그의 대답이 더욱 마음 깊이 남았던 것 같다. 얼마 뒤 어떤 복서를 취재차 만났다. 그는 한국 챔피언이었지만 경기료는 1년에 300만원도 되지 않아, 경기가 없을 땐 막노동판에 나간다고 했다. 권투의 영광은 그렇게 초라하게 부서져 있었다. 30이 넘어 이제 가망이 없는데도 그 복서는 훅의 제왕 김태식을 그리며, 세계 챔프를 꿈꾸고 있었다.

새삼 권투에의 기억을 떠올린 건 곽경택 감독의 <챔피언>과 마이클 만의 <알리> 때문이다. 오늘의 젊은 관객에겐 이름조차 어렴풋할 복서 김득구와 무하마드 알리가 두 영화의 주인공이다. 한 사람은 세계타이틀전 직후 죽었고, 한 사람은 당대를 풍미했으나 지금은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노인이 됐다. 솔직히, 나는 이 두 영화가 빨리 보고 싶어 안달이 난다. 두 영화가 예술일 것 같아서가 아니라, 전설적인 복서가 주인공이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권투의 시대가 있었고, 그때 권투는 위대했다. 위대했던 것들이 너무 빨리 사라지고 너무 빨리 바뀌어, 결국 아무것도 위대할 수 없는 세상을 사는 건 불행한 일이다. 두 영화가 나의 개인적 회고취향 충족에 끝나지 않고, 너무 빨리 떠나보냈으나 참으로 충일했던 어떤 기억과 체험을 오늘의 관객에게 묵직하게 전하는 그런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 이건, 영화산업과도 영화예술과도 상관없는, 정말 개인적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