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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궁금증
2002-01-25

편집장

<도니 브래스코>에서 지워지기 힘든 장면 하나. 늙고 무기력한 갱 알 파치노가 집에 쭈그리고 앉아 ‘동물의 왕국’(영문제목은 따로 있겠지만)을 넋놓고 보고 있다. 그럴듯한 주석을 붙일 의욕도 없이, 그냥 그 모습만으로도 마음이 저렸다.

편집자로서 자격미달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말 없지만,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를 며칠전에야 봤다. 보면서 동물의 왕국을 보는 알 파치노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무슨 연상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나쁜 남자>는 슬픈 영화였다. 주인공 한기는 짐승의 시간을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다. 아주 나쁜 방식으로 여인을 자기 세계로 끌어들이는 바람에 많은 여성평론가들을 다시 분노케 하긴 했지만, 한기의 그 나쁜 동물성은 어떤 충고도 계몽도 들어설 자리가 없는, 도저히 어찌해볼 도리 없는 천형처럼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한기의 방식이 너무 명백하게 나쁘기 때문에 별로 해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은밀하게 나쁜 게 가장 나쁘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이 영화의 자질에 대해 여기서 또 거론하는 건 독자들께 실례일 것 같다. 다만,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궁금해지는 건 숨기기 힘들다. 그런 영화를, 모든 출구를 막고 짐승의 시간을 사는 인간을, 저런 무게로 그리는 감독이라면, 주인공과 비슷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어떻게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고 악수하고 웃을 수 있을까. 혹시 놀이공원 같은 데, 혹은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데 갈까. 가서 즐겁게 놀까.

그렇게 치면 사실 김기덕 감독만 궁금한 건 아니다. 당연히 홍상수 감독도 궁금하고, 윤종찬 감독도 궁금하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하다. 그들은 대개, 인간이 인간성이라고 알려진 자질보다는 동물에 훨씬 가깝다는 걸 자신의 작품을 통해 아주 뼈저리게 실감케 하는 사람들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 마음에 지옥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겉으로나마 별로 다르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까.

범인(凡人)들이 편하게 이해할 수 있는 예술가는 고호나 랭보나 커트 코베인처럼 생 자체가 비장한 내러티브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절망의 진심을 전한 많은 예술가들이 그렇지 않다. 새삼 한 관객이 홍상수 감독에게 “당신은 사람들에게 자살하라고 권유하면서, 왜 자신은 자살하지 않는가”라고 물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 단순한 의문을, 그렇게 많은 감독을 만나는 특권을 누리면서도 풀지 못했다. 부끄럽지만,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나쁜 남자>는 여러모로 많은 상념에 젖게 하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