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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08

편집장

며칠 전 회사에 방이 붙었다. 기획위원 홍세화, 편집부국장 김훈.

<씨네21>이 한겨레신문 소속이긴 하지만, 매체 성격도 특수한데다 구성원도 대부분 특채로 들어온 외인부대여서, 회사 돌아가는 사정은 잘 모른다. 방이 붙고서야 이 두 사람이 <한겨레>에서 일하게 됐다는 걸 알게 됐다. 이건 드물게 아주 재미있고 반가운 일이었다. 난 두 사람을 개인적으로 전혀 모른다. 오직 그들의 글(또는 글로 정리된 그들의 말) 중의 일부를 만났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두 사람을 좋아하고 있었다.

홍세화씨의 이름은 많은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그의 책으로 알게 됐다. 그는 남민전이라는 70년대 아주 무시무시한 조직사건에 연루돼 프랑스로 망명했고, 파리에서 택시운전사로 일하면서 먹고산 사람이다. 나는 비운의 혁명가, 망명객이라는 호칭이 주는 그 아득한 매혹과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세대에 속한다(이번호에 소개된 명필름의 이은 감독도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내 세대 영화를 만들겠다”면서 일제시대 공산주의자 김산의 일대기에 손댄 건 너무 잘 이해된다). 섬세하면서도 강인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 푹 빠졌던 데는 그런 성향 탓도 없진 않을 거다. 그러나 그걸 꾹 누르고 봐도 홍세화씨는 드물게 만나는, 본래의 의미에서, 교양인이며 에세이스트였다. 사회주의자여서가 아니라, 열린 사회주의자여서 그가 좋았다. 두 번째 책을 보고 그런 느낌을 굳히게 됐다.

김훈씨는 오랜 기자생활을 거친 사람이다. 그는 질투심과 쾌감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탁월한 글쟁이였다. 백수 시절에 읽은 남도 창에 관한 그의 기사는 거의 예술처럼 보였다. 그의 글솜씨는 소설로 옮겨가선 더욱 당당해져 잘 알려져 있듯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까지 받았다. 정작 그를 다시 본 건 유명한 글솜씨 때문이 아니라 <한겨레21>에 실린 그와의 대담 때문이다. 거기선 그가 5공 시절 군부정권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썼던 경력도 거론됐다. ‘더러운 전력’에 대해 그는 변명도 반성도 하지 않았다. “특별히 내세울 일도 아니지만, 그렇게 하는 게 적어도 동료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는 게 내가 파악한 그의 말의 요지였다. 그가 그 ‘더러운 경력’으로 이룬 건 그냥 기자생활을 계속한 것뿐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공개적인 반성을 믿지 못하고 있다. 반성은 입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확신을 90년대를 거치면서 어느샌가 갖게 됐다. 김훈씨의 반성하지 않은 말(그는 반성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확신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추측한다)에서 그가 우파이며, 이야기되는 우파라고 믿게 됐다.

우리 건물에 열린 좌파와 이야기되는 우파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그게 재미있다. 두 사람을 <씨네21> 지면에도 등장시키려는 궁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