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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의 트립 투 이탈리아] ‘카스텔리 로마니’ - 로마 근교 전원도시들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레오파드>. 로마 근교의 카스텔리 로마니에서의 촬영 장면.

괴테의 초상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독일 화가 티슈바인이 그린 그림일 것이다. 괴테가 흰색 망토 모양의 긴 겉옷을 걸치고, 로마 근교를 배경으로, 그리스 로마의 신처럼 비스듬히 누운 듯 포즈를 잡고 있는 그림이다. 괴테의 오른쪽 옆에는 신화를 조각한 돌이 있고, 가운데 약간 뒤로는 제국의 폐허인 기원전 1세기의 건축물 ‘메텔라의 묘지’(Mausoleo di Cecilia Metella)가 보인다. 신고전주의 그림답게 전체적으로 편안하고 안정돼 보이며, 문호 괴테는 조화로운 자연의 주인공처럼 전면에 강조돼 있다. 작가 괴테와 화가 티슈바인은 친구 사이였고, 로마 인근을 여행할 때는 길동무였다. 두 예술가 모두 로마의 찬양자였는데, 이들이 로마만큼이나 애정을 갖고 방문한 곳이 바로 로마 근교의 ‘카스텔리 로마니’(Castelli Romani)다. 그림의 맨 뒤, 야트막한 산 주변에 형성된 14개의 작은 도시들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 카스텔리 로마니다.

로마 근교의 전원 풍경에 매료된 괴테

괴테는 1786년 9월부터 대략 2년간 이탈리아를 여행한 뒤 <이탈리아 기행>을 썼다. 그가 강조한 지역은 여정에 따라 베네치아, 로마, 나폴리, 시칠리아인데, 머문 시간과 기록의 분량에서 보자면 이 기행문은 ‘로마 기행’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그만큼 로마가 강조돼 있다. 고전주의자답게 괴테는 로마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처음 이탈리아에 왔을 때, 로마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르네상스의 본산인 피렌체를 그냥 지나칠 정도였다. 그리고 시칠리아에서 다시 육지로 돌아온 뒤는 로마에서만 머물렀다. 2년 여정의 반 이상을 로마에서 보낸 셈이다. 따라서 책(특히 후반부)은 ‘로마 기행’ 혹은 ‘로마 일기’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괴테는 로마에 머물 때, 고전주의 건축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있었는데, 이때 주로 방문한 곳이 인근의 카스텔리 로마니다. 로마에서 남동쪽으로 대략 20~30km 떨어져 있다. 프라스카티(Frascati), 카스텔 간돌포(Castel Gandolfo) 등 14개의 작은 도시는 산과 알바노 호수(Lago Albano) 사이에 몰려 있다. 이곳은 제국 시절부터 귀족들의 여름 휴양지로 이름을 알렸는데, 지금처럼 화려한 건축물과 아름다운 전원으로 유명해진 것은 ‘아비뇽 유수’라는 역사적 사건 때문이다. 교황이 당시의 세속적인 왕권에 포로가 되는 바람에, 로마의 교황청이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이전됐을 때다. 이 사건을 보통 교황을 잡아가둔다는 뜻에서 ‘유수’(幽囚, Captivity)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로마 사람들은 이 사건에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유수’를 ‘아비뇽의 악’(Cattivit avignonese)이라고 말한다. 로마의 교황청만이 선이라는 뜻에서다. 강대해진 프랑스 왕권에 위협을 느껴, 고위 성직자들, 귀족들 그리고 관련 주민들이 로마를 버리고 피난가기 시작했다. 14세기에 그들이 정착하며 발전된 곳이 카스텔리 로마니다. 카스텔리 로마니는 ‘로마(인)의 성들’이란 뜻이다. 오래전부터 로마 출신 귀족들의 성들이 많이 있어서이다. 귀족들은 ‘유수’ 이후에도 여기에서 경쟁하듯 저택들을 지었고, 지금 그 건물들은 대부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보물’로 남아 있다.

괴테는 독일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지역의 아름다움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스케치를 대신 보내기도 했다. 카스텔리 로마니의 아름다운 풍경은 ‘시인’ 괴테를 ‘화가’로 둔갑시킨 셈이다. 알다시피 괴테는 프로급의 그림 실력으로도 유명한데, 카스텔리 로마니의 아름다운 풍경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카비리아의 밤>. 카스텔리 로마니의 알바노 호수 부근이다. 사진은 줄리에타 마시나.

펠리니가 그린 카스텔리 로마니

괴테는 특히 프라스카티에 있는 ‘알도브란디니 별장’(Villa Aldobrandini)의 아름다움을 반복하여 강조했다. 견고한 느낌의 르네상스 양식, 조화를 이룬 정원과 연못 그리고 실내를 장식한 그림들에 감탄을 드러내곤 했다. 사실 이런 별장들은 카스텔리 로마니의 14개 마을 전체에 하나쯤은 다 있다. 그러므로 르네 상스 시대의 귀족 문화를 경험하고 싶으면 이 지역에 있는 별장들만 둘러봐도 될 것이다.

그런데 네오리얼리즘의 전통을 가졌기 때문인지 이탈리아영화에서 이 지역을 괴테처럼 귀족적으로 묘사한 경우는 거의 없다 (이 지역이 외국인에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이유 등으로, 외국영화의 배경이 된 경우는 보기 드물다). 카스텔리 로마니가 낭만적으로, 하지만 서민적으로 그려진 대표적인 경우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카비리아의 밤>(1957)에서다. 매춘부 카비리아(줄리에타 마시나)가 사기꾼 남자에게 속아 ‘사랑의 데이트’를 즐기는 후반부에서의 배경이 카스텔리 로마니다. 그녀는 드디어 사랑을 찾았다는 흥분에 그 남자와 함께 근사한 곳에서의 데이트를 계획했고, 이들이 도착한 곳이 카스텔리 로마니의 ‘알바노 호수’다. 빼어난 풍경 덕분에 프랑스의 코로 같은 화가들에 의해 자주 그려진 명소다. 하지만 하층민 탈출을 꿈꾸는 카비리아에겐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은 곳이었다. 그녀에겐 호수를 감상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역설적으로 카스텔리 로마니의 절경은 하층민 카비리아의 궁핍한 처지를 강조하는 곳이 되고 말았다.

펠리니에게 카스텔리 로마니의 주인은 귀족이 아니라 하층민들로 짐작된다. 귀족들이 이주해오기 전부터 농민들이 이곳에서 땅을 일구고 살았고, 당시 펠리니는 네오리얼리스트였다. 현대 이탈리아 리얼리즘의 대표감독인 마르코 벨로키오의 <유모>(1999)는 카스텔리 로마니 출신인 어느 유모의 삶을 다룬다. 20세기 초가 배경인 이 영화에서 유모의 남편은 정치적인 활동 때문에 감옥에 갇혔고, 그녀는 로마 부르주아 집안의 유모로 고용된다. 상층부 로마와 하층부 로마 근교(곧 카스텔리 로마니)의 지리적 차이가 강조돼 있고, 그 지리적 차이만큼 사람들 사이의 차이도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벨로키오에 따르면 괴테의 넋을 뺏었던 카스텔리 로마니의 낭만적 풍경 속에는, 감옥에 갇히고, 다른 자식에게 젖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민중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네오리얼리즘에 낭만성을 잘 섞었던 피에트로 제르미의 <형사>(1959)에도 로마와 카스텔리 로마니가 비교돼 있다. ‘죽도록 사랑해’(Sinn me moro)라는 주제가로 유명한 이 작품은 로마 상층부 여성의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이 집의 하녀(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사는 곳이 카스텔리 로마니다. 그녀는 로마 시내의 번쩍이는 집과 낡아빠진 건물들만 보이는 카스텔리 로마니 사이를 오가며 일한다. 형사는 가난한 하녀의 주변을 의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형사>에서 카스텔리 로마니는 하층민과 범죄의 이미지로 표현돼 있다.

괴테의 귀족적 아름다움을 영화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은 루키노 비스콘티의 <레오파드>(1963)이다. 물론 이 영화의 배경은 시칠리아다. 그런데 비스콘티는 일부 실내 장면을 로마 근교에서 찍었다. 이를테면 주인공 버트 랭커스터가 천체망원경이 있는 서재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그 어떤 혼란이 와도 세상은 별자리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때, 창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이 카스텔리 로마니다. 티슈바인이 그린 괴테의 초상화 속 풍경처럼, 세상은 편안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알다시피 <레오파드>는 그 균형의 균열을 그려낸 대서사극이다.

지금도 카스텔리 로마니는 귀족적 아름다움과 민중적 아름다움이 섞여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여행자들에겐 저택에선 괴테가, 서민층의 마을에선 펠리니와 리얼리스트들이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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