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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박재욱의 <스타워즈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 심장이 뛴다

감독 조지 루카스 / 출연 마크 해밀, 해리슨 포드, 캐리 피셔 / 제작연도 1977년

어릴 적 TV에서 <스타워즈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이 방영되고 있었다. 루크 스카이워커(마크 해밀)가 오비완 케노비(알렉 기네스)를 만나 광선검을 받는 장면을 보는 순간 이 영화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고, 집에 있던 VCR에 급하게 비디오테이프를 넣고 녹화를 했다.

당시 나에겐 시골 소년 루크가 모험을 떠나고, 동료들을 만나 공주를 구출하고, 거대한 악과 부닥치고, 서로 힘을 합쳐서 악을 물리치는 이야기가 좋았고, 난생처음 보는 X윙 우주선과 데스 스타 등이 등장하는 제대로 된 SF물을 접하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와 동생은 비디오테이프가 너덜너덜해질때까지 반복 시청을 했는데, 동생은 영화의 후반부 대사를 죄다 외웠고, 난 이 영화의 특수효과에 몰입해 있었다.

10여년 후, 미국으로 건너가 할리우드 특수시각효과(VFX) 업계에서 테크니컬 디렉터로 일하기 시작했다. 내 목표는 <스타워즈> 시각효과에 참여해서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었다. <스타워즈>의 시각효과는 루카스필름의 자회사인 ILM(Industrial Light & Magic)에서 제작하는데, 이 분야 최고의 회사였다. 하지만 <투모로우> <킹콩> <수퍼맨 리턴즈> 등 10여편의 영화 작업에 참여하는 동안에도 이 회사와는 인연이 닿지 않다가 2006년이 되어서야 ILM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곳은 내게 박물관과 같았다. 내가 일하던 자리에서 몇 발짝만 걸어나가면 영화에 실제 쓰였던 R2D2가 있고 그 옆에는 <스타워즈 에피소드5: 제국의 역습>에 등장했던 탄소 냉동된 한 솔로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시리즈 제작은 이미 끝나 있었고, 나는 그곳에서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에 시니어 테크니컬 디렉터로 데비존스 등의 CG 크리처와 바닷물 소용돌이 시뮬레이션 제작을 담당했다. 그 시기 아내는 조지 루카스의 사무실이 있는 루카스 렌치에서 근무했는데, 아내의 초청으로 루카스 렌치의 행사 등에 참여하면서 조지 루카스를 볼 수 있었다. <스타워즈> 광팬으로서 그를 가까이서 본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핼러윈 파티에서 조지 루카스에게 다가가 셀카를 찍어도 되냐고 물었을 때 어찌나 가슴이 두근대던지!

나는 ILM을 마지막으로 할리우드 VFX 업계를 떠났다. 당시 조지 루카스가 더이상의 <스타워즈> 제작은 없다고 말했고, <스타워즈> 제작사에서 일했다는 것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하고 블리자드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스타워즈>에 대한 팬심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2012년 첫째가 막 태어났을 때 아기에게 건넸던 첫마디가 “I’m your father”였다. 그때만 해도 디즈니가 루카스필름을 인수하고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 제작을 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한국에 돌아온 지 10년이 지난 지금 <스타워즈>는 화려하게 시리즈를 재가동했다. 이젠 팬심만 가지고 다시 할리우드로 건너가기엔 한국에서 자리잡은 지 너무 오래 지난 것 같다. 레아 공주(캐리 피셔)는 고인이 되었고, 소년 루크 스카이워커는 4편의 오비완 케노비만큼 나이가 들었다. 그래도 오비완 케노비가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강력하다”고 말했던 포스는 우리 세계에서 실존하는 포스는 아니지만 이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한국의 한 소년이 할리우드에 진출해서 조지 루카스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게 한 강력한 힘이 아니었을까.

박재욱 VFX 할리우드 진출 1세대로 ILM, 웨타, 오퍼나지 등의 회사를 거쳐 게임회사 블리자드에서 시니어 테크니컬 디렉터, EA에서 아트 디렉터를 역임했다. 현재 게임회사 EVR 스튜디오 이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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