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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립 투 이탈리아] 마테라, 바위 집의 도시

영화가 발견한 ‘신성의 땅’

<원더우먼>에서 테미스키라의 도입부는 마테라 풍경에 CG를 더했다.

<원더우먼>(2017)의 첫 장면은 신화의 땅 ‘테미스키라’이다. 아마존의 전사들이 사는 곳이다. 산꼭대기에 크고 작은 돌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고, 주변엔 푸른 나무들이 둘러쳐져 있다. 게다가 산 정상의 마을인데 곳곳에 작은 폭포와 시냇물도 보인다. 이곳이 현실이기보다는 신화의 공간이니, 지리적 개연성이 떨어져도 크게 문제될 게 없었다. 컴퓨터그래픽(CG) 작업이 잔뜩 입혀져 있어서, 환상처럼 보이는 이곳은 산 정상의 바위 집 도시로 유명한 마테라(Matera)다. 이탈리아 최남단인 바실리카타주에 있는 작은 고도다. 폭포, 시냇물, 돌집 외벽의 나무들은 CG의 효과이고, 산 정상에 돌집들로 만들어진 ‘기이한 도시’의 모습은 현실 그대로다. 마테라는 <원더우먼>에 그려진 대로 현실이기보다는 차라리 환상에 가까운 도시다.

바위 산 정상의 고대 도시

이탈리아 남단의 마테라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네오리얼리즘 덕분이다. 노동자, 농민들의 일상을 포착하려는 영화적 태도는 이들이 사는 거주지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됐고, 이는 이탈리아에 대한 지리적 탐구로 이어졌다. 이를테면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스트롬볼리>(1950)처럼 무명의 화산섬이 재발견되고, 이곳에서 이탈리아의 특수성, 곧 본질을 찾는 식이다. 마테라도 이때 ‘영화적으로’ 발견됐다. 알베르토 라투아다 감독의 <암늑대>(1953)를 통해서다. 네오리얼리즘에 큰 영향을 끼친 소설가 조반니 베르가의 동명 원작을 각색했다. 소설에 등장한 시칠리아의 가난, 원시적인 성적 열망, 종교적 신비주의를 감독은 마테라에 옮겨놓았다. 산의 대부분이 바위이고, 이곳에 바위처럼 단단한 돌집들, 그리고 집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누추한 동굴같은 거주지가 엉켜 있는 곳이다.

그런 풍경은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도 낯설었다. 마치 중세의 어느 마을로, 아니 로마제국의 어느 가난한 마을로 되돌아간 듯한 비현실적인 공간이었다. 실제로 영화 촬영 당시에 이곳은 빈민촌이었다. 여기서 뛰어난 미모를 지닌 중년 부인 ‘암늑대’가 마음에 둔 젊은 군인과 가까이 있기 위해, 그를 딸과 결혼까지 시키며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위험한’ 멜로드라마다. 친족관계의 질서를 깨는 ‘암늑대’의 근친상간은 놀랍고 불편한 범죄이지만, 비현실적인 공간 마테라의 특성 때문인지 남의 일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만큼 마테라는 저 멀리 바깥의 세상으로 비쳤다.

<암늑대>는 도발적인 내용보다는 어쩌면 마테라라는 특별한 공간 때문에 더 큰 주목을 받았는데, 해외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마테라가 세계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데는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바로 <마태복음>(1964)을 통해서다.

로마의 도둑을 그린 <아카토네>(1961), 그리고 로마의 창녀를 그린 <맘마 로마>(1962)를 만든 뒤, 파졸리니는 장편 세 번째 극영화로 예수의 일생에 도전한다. 코뮤니스트가 예수의 삶을 다룬다는 이유로 제작 전부터 말들이 많았다. 우파들은 그의 종교비판을 걱정했고, 동료인 좌파들, 특히 마르크시스트들은 종교를 수용하는 ‘반동적’인 결과를 우려했다. 파졸리니는 이데올로기적인 내용보다는 미학적 결과에 더 주목했다. 마태가 묘사한 대로 예수의 삶을 리얼하게 그리는 게 첫째 목표였다. 이때 가장 걱정했던 것이 예수 당대의 팔레스타인 지역의 재현이었다. 파졸리니는 스튜디오가 아니라 현장에서 찍고 싶어 했다. 장소 헌팅을 위해 그는 예루살렘, 텔아비브 등 팔레스타인 지역을 헤집고 다녔다. 그런데 그의 기대와 달리 팔레스타인 지역은 이미 너무 서구화됐거나 산업화돼 있었다. 예수 당시의 모습을 되찾기란 불가능했다. 파졸리니가 대안으로 발견한 도시가 마테라다(파졸리니는 이때의 여행을 바탕으로 1965년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다큐멘터리 <마태복음을 위한 팔레스타인 현지조사>를 발표한다).

<벤허>의 리메이크작은 예루살렘 장면 대부분을 마테라에서 찍었다.

파졸리니의 <마태복음>에서의 원시성

<마태복음>은 예수의 수태로 시작한다. 아마 이 영화를 본 관객은 잊지 못할 도입부 장면인데, 예수의 부친 요셉이 꿈에서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수태에 관한 설명을 듣는 장소이다. 요셉은 동정녀 마리아가 수태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곳은 요셉의 고향인 나사렛인데, 이때 스크린에 전시된 공간이 바로 마테라다. 산꼭대기에 돌집들이 운집해 있고, 곳곳에 빈민들의 동굴집도 보이고, 헐벗은 아이들이 해맑게 놀고 있는 장면이다. 그곳은 2천년 전의 팔레스타인 땅처럼 보였다. 그만큼 현실적이지 않은 공간이다. 산꼭대기에 돌집 마을이라니? 게다가 빈민들이 거주하는 동굴들은 또 뭔가? 그런 동굴 집에서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 예수를 보러온 동방박사의 방문을 받는다. 파졸리니의 <마태복음>은 만약 우리가 예수 시절의 팔레스타인 땅을 볼 수 있다면, 바로 저런 곳일 거라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켰다. 그만큼 지리적 개연성을 높여놓았다.

돌집들이 들어선 산꼭대기의 마을은 특히 ‘사시 디 마테라’(Sassi di Matera, 마테라의 돌이라는 뜻)라고 불린다. 파졸리니는 이곳을 다목적으로 이용했다. 예수의 고향 나사렛은 물론, 탄생지 베들레헴, 그리고 생의 마지막에 벌어졌던 ‘수난’의 장소 예루살렘으로도 마테라를 이용했다. 말하자면 예수와 관련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의 주요한 일들은 전부 마테라에서 찍었다. 이를테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십자가 책형 장면은 늘 마테라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갈보리 언덕의 비극 저 너머로 마테라의 바위집들이, 곧 빈민들의 집들이 마치 목격자들처럼 그 현장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식이다.

파졸리니의 <마태복음> 이후에 마테라는 ‘성서적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아마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멜 깁슨이 연출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일 것이다. 예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피칠갑’을 하는 ‘스플래터’(Splatter) 장르영화다. 이 영화의 실내 장면은 로마의 치네치타(Cinecitta) 스튜디오에서, 그리고 실외 장면은 대부분 마테라에서 찍었다. 예수가 십자가를 메고 지나가는 딱딱한 돌길의 도시가 바로 마테라다. 고난을 느끼게 하는 돌과 암벽의 도시 마테라 자체가 예수의 수난을 상징하는 공간이 됐다.

마테라는 <마태복음>을 찍을 때만 해도 여전히 무명이었고, 바위 동굴에는 빈민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후에 여러 영화의 배경이 되면서 유명세를 탔고, 1980년대 후반 들어서는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마테라는 이제 원시적이고 헐벗은 공간이 아니라, 고대문명의 세련된 도시로 거듭난 것이다. 이런 변화된 매력이 온전히 표현된 대표적인 작품이 고전 <벤허>(1959)의 리메이크작 <벤허>(2016)다. 리메이크작 <벤허>도 예루살렘 장면은 마테라에서 찍었다. 벤허의 예루살렘에서의 행적이 강조된 까닭에 이 영화의 배경도 대개 마테라다. <원더우먼>과 달리 비교적 현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았다. 산의 정상은 암벽으로 구성돼 있고, 이런 암벽에 도시가 들어서 있는 장면은 볼 때마다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그런 비현실적인 지리적 특성이 이곳에 ‘신성’까지 입혀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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