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내 인생의 영화
정창욱의 <흐르는 강물처럼> 그게 브래드 피트야
정창욱(셰프) 2018-01-17

감독 로버트 레드퍼드 / 출연 크레이그 셰퍼, 브래드 피트, 톰 스커릿, 브렌다 블레신, 에밀리 로이드 / 제작연도 1992년

어려서부터 물고기를 좋아했다. 어머니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할 때에는 항상 물고기였고, 처음으로 읽은 한자는 ‘釣’(낚을 조)였다. 한자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는데 저 한자를 필사적으로 외운 이유는 외삼촌과 여행을 다닐 때 저 한자를 알고 있으면 유료 낚시터를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대나무 낚싯대에 연어알을 끼워 양식한 무지개 송어를 낚는 ‘손맛’ 낚시터 수준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내 의지로 취미를 가질 수 있을 때 자연스레 낚시를 골랐다. 10대 때 어린 막냇동생을 데리고 무작정 한강으로 버스를 타고가 루어낚시를 한 기억이 있다. 조악한 채비에 캐스팅을 할 줄도 몰랐지만 물가에 서서 보이지 않는 물고기를 기대하는 그 기분은 짜릿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물고기를 잡지 못하는 날이 이어졌고 돈도 들고 시간도 드는 낚시를 지속하기 어려운 날들이 계속됐다. 짧은 하와이 생활 중에도 낚시를 매일 즐겼지만 기본적으로 생미끼를 써야 하는 바다낚시였고 해안에서는 잡기 어려운 GT(대형 전갱잇과 물고기)를 노리는 동료들과 어울렸기 때문에 물고기 구경은 그닥 많이 하지 못했다. 그때엔 낚시를 하고 있다는 그 자체의 느낌과 친구들과 바닷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것 같다. 그 뒤로 일본에서 주방 막내 생활을 하면서 낚시는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작은 식당을 차리고 ‘내 시간’ 이라는 것을 갖게 되었을 때 주저 없이 낚시를 하러 떠났다. 계류에서 루어를 이용해 송어들을 낚았다. 플라이피싱은 너무 어려워 보여 도저히 엄두도 나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기본적인 지식만 쌓아놓은 상태였다. 어느 날 스승인 요시다 아저씨가 플라이낚시를 하셨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댁에 놀러가면 수술장비와 비슷한 도구들이 유리장 안에 있는 것을 보곤 했는데 그게 플라이(미끼)를 타잉(미끼를 만드는)하는 도구들이라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바로 전화를 걸어 가르쳐달라 부탁을 드렸고 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장비를 사모으고는 플라이피싱을 시작했다. 산을 한참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이때 알았다. 차가운 물을 좋아하는 송어의 습성 때문에 산속으로, 계곡으로 누비고 다녀야 했다. 물 흐름을 정확히 읽어 플라이를 던져야 하고 그때 그때 물고기가 먹는 수생곤충을 적확하게 찾아내어 캐스팅해야 한다. 한참을 플라이를 잃고(나무에 걸리면 끝이다) 낚싯대까지 부러뜨리며 고군분투했다.

이 낚시는 침묵과 고요로 표현된다. 사람이 물에 들어가면 당최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송어들이기에 지근거리에서 함께 즐길 수 없어 자연스레 혼자가 된다. 혼잣말을 하는 편이 아니라 당연 침묵하게 된다. 전화기도 물론 열어볼 틈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 낚시를 하다보면 고요한 상태가 된다. 물소리와 내 숨소리가 전부다. 그 순간이 무척 좋게 느껴지는 때가 많다.

<흐르는 강물처럼>을 처음 봤을 때에는 심심한 전개에 영화를 끝까지 보지도 않았다. 이런 징검다리 감상이 이어져 누더기 이불처럼 머릿속에 기억되었다. 이 영화를 온전히 관람하고 몇번씩 보게 된 건 30살이 넘어서다. 어려서 이해가 가지 않던 장면들도 이해가 되고 영화의 배경이 되는 몬태나의 강을 보면서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플라이낚시도 하고 있으니 고증이 되었는지 체크하면서 보게 되고, 송어가 맥을 못 추는 것을 발견한 것은 최근이다.

하루는 일본 도치기현에 스승인 요시다 아저씨와 그 친구분들과 낚시를 갔다. 모두 만족할 만큼 송어를 낚고 숙소에 다시 모여 맥주를 한잔하고 있는데 자연스레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이야기가 나왔다. 그중 한분이 말씀하셨다. “그때 내가 몬태나주에 컷스로트(송어의 일종)를 잡으러 갔는데 동네에 유명한 낚시숍이 전부 닫혀 있는 거야. 알고 봤더니 뭔 영화를 찍는다고 죄다 가이드를 하러 나갔대. 후에 만나서 어땠냐고 물으니 어떤 젊은 배우 캐스팅을 정말 잘했다고 칭찬을 하더라고. 그게 브래드 피트야.”

정창욱 셰프. <냉장고를 부탁해> <인간의 조건-도시농부> 등에 출연했다. 현재 탄탄멘 전문 레스토랑 금산제면소를 운영 중이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