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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건축] <1987> 남영동 대공분실과 도시계획으로 만들어진 근대 공공 공간
윤웅원(건축가) 2018-02-15

공공 공간은 건물 안까지 확장된다

남영동 대공분실.

도시의 긴 역사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공공 공간’이 확대되는 과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도시 지도를 그릴 때 건물을 검은색으로 칠하고 외부 공간은 흰색으로 남겨놓은 지도 표현방식을 ‘형상-배경 다이어그램’(figure-ground diagram)이라고 한다. 지도에서 건물들을 검은색으로 표시하면 길과 광장, 공원 같은 비어 있는 공간의 구조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런 방식의 지도 중에서도 1748년 조반니 바티스타 놀리가 그린 로마의 지도는 특별한데, 교회나 관공서같이 공공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건물들은 검은색 대신 내부 평면을 그려서, 공공 공간이 건물 내부로 확장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근대적인 도시계획으로 잘 알려진 오스만 남작의 파리 개조 계획은 1853년에서 1870년 사이에 파리 시내 2천채 정도의 건물을 철거하고 도심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오스만은 마차도 들어가기 어려운 좁은 길로 이루어진 파리를 관리가 가능한 근대도시로 바꿔놓았다. 오스만 남작의 도시계획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오페라 대로(Avenue de l’Opera) 같은 도시를 관통하는 직선도로의 개설이다. 파리를 가로지르는 이 직선도로들은 주요 공공장소들과 유적, 기념비들을 도시 외부에 노출시킨다. 이 직선도로는 이동에 대한 기능적인 역할뿐 아니라 근대 공공 공간의 삶이 도시에 도입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 도시의 공간, 투명하거나 관리되거나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1877년 그림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은 우산을 쓰고 파리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 속 남자들은 모두 신사복 위에 코트와 모자를 걸친 정장 차림이고, 여자들도 평상복이라기보다는 다소 화려한 차림새를 하고 있다. 그림 속 인물들은 모두 ‘공공 공간의 복장’을 하고 있다. 마치 사진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카유보트의 그림은 넓은 직선도로가 도시에 준 변화, 공공 공간에 대한 자각을 보여주고 있다.

공공 영역의 확대라는 측면으로 본다면 1902년은 건축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이루어진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벨기에의 기술자 에밀 푸코가 큰 크기의 유리판을 산업적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해냈다. 투명한 유리창의 대량생산과 건물 입면의 사용은 외부의 공공 공간과 사적인 건물 내부로 구분되던 도시를 변화시켰다. 이전 시대의 건물에서 발견되는 작은 창문들이 석재를 쌓아서 만드는 구조방식에 더 기인하는 측면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큰 유리판의 생산은 큰 창문 디자인을 촉발했다.

투명한 유리의 건물 외벽 사용은, ‘투명성’이라고 정의될 수 있는 새로운 시대의 도시 모습을 상징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리의 사용을 통해서만 현대 도시의 ‘투명성’ 개념을 설명하는 것은 과도한 의미 부여로 보인다.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새로운 공공 건물들의 탄생이다. 이전 시대의 도시에서 거리와 광장이 갖고 있던 역할이 아케이드, 백화점, 쇼핑센터, 경기장 등 새로운 종류의 공간들로 확대되었다. 심지어 개별적인 주택마저 ‘유리’로 만들어진 텔레비전에 의해서 변화된다. 이제 개인의 사적인 공간도 외부세계와 연결되는 공간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등록되고 기록되는 현대 도시의 삶은, 앞에서 말한 ‘놀리 지도’에 남아 있던 어두운 공간을 더욱더 사라지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모두에게 노출되는 현대 도시는 역설적으로 다양한 ‘섬’을 만들어내고 있다. 경찰서, 사기업, 교도소, 정보기관 같은 공간이 그것이다. 이러한 시설들은 그 폐쇄성의 정도에 따라 다른 형태를 띠게 된다. 경찰서와 사기업이 신분 확인을 통해 출입이 허락되고, 교도소가 높은 담으로 도시로부터 격리된다면 정보 기관은 그 존재조차 사라진 유령 공간이다. 그리고 이렇게 ‘관리’되는 공간과 독재정권이 만날 때 그 안에서 쉽게 근대 이전의 어두운 공간들이 다시 나타나게 된다.

조반니 바티스타 놀리가 그린 로마 지도.

영화 속 공간의 인과관계

남영동 대공분실은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이다. 현재는 7층으로 증축되었지만 원래의 설계에선 5층 건물이었다. 건물을 보게 되면 금방 낯선 점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5층 창문이 지나치게 작다는 점이다. 다른 층과는 다르게 얇은 수직 창들이 5층 벽에 늘어서 있다. 검은색 벽돌을 외장재로 사용한 이 건물은 5층의 작은 창문들만 본다면 중세시대의 건축을 닮아 있다. 게다가 5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직통계단은 첨탑의 유배를 연상시킨다. 이 창문들의 좁은 폭이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설계됐다는 해석도 있지만 그보다는 취조실로 사용되는 5층을 외부세계로부터 격리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아니, 고문실로서 5층의 긴 역사는 좁은 창문이 정말로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갖게 하기도 한다. 영화 <1987>(2017)은 남영동 5층 대공분실에서 시작해서 시청 앞 광장에서 끝이 난다. 남영동 밀실의 죽음은, 검찰, 부검병원, 교도소를 거쳐서 조금씩 광장으로 퍼져나왔다. 언제나처럼 공간을 컨트롤할 수는 있어도 사람의 마음을 컨트롤하는 데엔 실패한다. <1987>에는 두개의 피가 흐르고 있다. 박종철 시신을 덮은 천 위로 배어나오는 피와 이한열의 얼굴 위에 흘러내리는 피다. 남영동 대공분실의 은밀한 공간에서 흐르는 피는 천천히 배어나오고, 연세대 정문 앞의 피는 빠르게 아스팔트 위로 떨어진다.

본래의 속성에 따르면 자유롭게 열려 있어야 할 대학교 캠퍼스도 1987년에는 관리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학생을 분리해내기 위해 교문 앞에서 학생증을 검사하고, 집회하는 학생들을 캠퍼스 안에 가둬놓으려고 최루탄을 동원한다. 남영동 대공분실이 내부에서 관리하는 섬이라면, 대학 캠퍼스는 밖에서 관리하는 섬이다.

<1987>의 마지막 장면, 시청 앞 ‘광장’ 집회는 엄밀하게 말하면 시청 앞 ‘도로’ 집회다. 당시의 시청 앞은 분수를 중앙에 둔 교통 광장이었다. 광장을 원하지 않는 시대에 도로를 점거해서 광장으로 만드는 것은 독재의 시간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도로 위 아스팔트 위에 서 있는 경험은 사람들에게 지금과 다른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한다.

“그래서 세상이 바뀌나요?”라고 말하던 연희(김태리)도 찾아간 마지막 집회 장면의 흥미로운 점은 광장 주변 건물들의 창문 모습이다. 열려 있는 사무실 창문들마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광장은 건물들에도 스며들었다. 그렇게 공공 공간은 정말로 건물 안까지 확장된다.

이번이 ‘영화와 건축’으로 쓰는 마지막 글이다. 지나고 보니, 영화와 건축을 연결하는 논리가 억지스러운 경우도 적지 않아서 창피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두 가지, 영화와 건축에 대한 글을 쓸 수 있어서 행복했다. 영화가 시간과 관련해서 인과관계나 개연성에 대해서 민감하지만, 공간의 인과관계엔 관심을 덜 기울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공간 구조가 허술한 영화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 칼럼이 영화가 공간을 다루는 데 관심을 좀더 갖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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