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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의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가장 우아한 가상현실

감독 일디코 에네디 / 출연 게자 모르산이, 알렉상드라 보르벨리 / 제작연도 2017년

사실 이 영화는 말하자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어떤 것을 이상하게도 ‘그립게’ 만드는 경험 같은 것이었다. 2015년에 선댄스영화제에 VR영화가 다수 상영된다는 기사를 보고는 무작정 미국으로 향했다. 두번이나 경유하는 가장 싼 비행기를 타고 갔다. 그곳에서 새로운 서사 도구로써 VR의 가능성을 바라보는 시선들을 만났고, VR영화의 언어를 찾고 싶은 호기심을 안고 돌아와 직접 찍어보기 시작했다. 그 후 VR이 과연 영화의 미래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어떤 예술형식 혹은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있을지 모색하는 것이 직업적 일상이 되었다. 영화가 사각형 창문과 같은 프레임을 통해 객석에 앉은 관객에게 가상을 재현하는 것과 달리 VR은 보통 HMD로 관객의 시각장을 모두 차지하여 가상 공간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몰입감과 상호작용을 제공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전례없이 가상에 깊숙이 참여하는 체험을 하면서도 오히려 고립된 것 같은 부정적인 느낌을 받기도 했다. 또한 기존 영화의 플롯이 주는 수동적이지만 탄탄한 경험에 비해, 많은 것이 가능해 보이는 ‘상호작용’이 서사 속에서 어떤 경험이 될 수 있을지 답이 필요했다. 그렇게 어떤 상호작용이 VR의 가능성인지 고민하던 차에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를 보게 됐다.

주인공 마리어(알렉상드라 보르벨리)와 엔드레(게자 모르산이)는 꿈이라는 무의식 세계 속에서만 선명한 감각과 진정한 상호작용을 경험한다. 익숙해진 고독과 결핍에 몸을 맡긴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두 사람은 신비롭게도 그들의 꿈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꿈속 호숫가에서 사슴이라는 다른 존재로 서로를 응시하고 교감한다. 말하자면 ‘가상’의 연결을 통해 비로소 현실에서도 서로가 마주해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그 가상을 통해 현실을 새롭게 일깨우는 변화의 여정으로 나아가고자 “꿈에서 만나자”고 한다. 꿈을, 가상을, 진정한 소통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우아한 가상현실이라고 느꼈다. 마리어와 엔드레가 다른 존재로서 만나듯이 가상에서 타인과 창조적인 방식의 소통이 가능하다면, 그리고 그것이 치유의 힘을 가진 서사 속에서라면 어떨까 상상했다. 물론 단절되었던 몸과 마음, 의식과 무의식의 감각들을 연결시키며 이 영화가 소생시키는 ‘현실’을 꼭 가상현실 기술에 의존해서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내 안에서 찾을 수 있도록 가상은 도움을 줄 뿐이다. 곧 개봉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레디 플레이어 원>도 그러한 사회적 상호작용에 기반한 가상현실, 나아가 소셜 VR 속 생활을 스펙터클하게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는 미래의 인생에서 만들어내고 싶은 VR영화의 경험을 미리 꿈꾸고 온 듯한 작품이었다.

최민혁 CJ VR/AR Lab 프로듀서. 〈부산행〉과 〈군함도〉 ScreenX판 PD였으며 VR 단편영화 〈공간소녀〉,〈밤창문〉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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