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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추파
김혜리 2018-03-28

<로건 럭키>

스티븐 소더버그의 <로건 럭키>는 극중 대사가 자칭하듯, 블루칼라 인물들이 주도하는 ‘오션스 세븐 일레븐’이다. 레이싱 경기장의 현금을 싹쓸이할 결심을 한 지미(채닝 테이텀)가 냉장고에 붙여둔 십계명은, 다양한 직군 종사자에게도 유용해 보인다. 시험삼아 잡지 기사 작성에 지미의 규칙을 적용해보았다. 1) 쓰기로 결심한다. 2) 취재계획을 세운다. 3) 섭외가 실패할 경우 대안을 마련해둔다. 4) 취재원 및 편집자와 원활히 소통한다. 5) 유익한 조언자가 주변에 있을지도 모른다. 6) 계획에 없는 사고가 발생한다. 7) 반드시 꼬인다. 8) 오버는 금물. 9)한번 꼬였다고 두번 꼬이지 말란 법 없다. 10) 길게 쓴다고 기사가 나아지지 않는다. 정말 이번 기사에 다 욱여넣어야 하는지 재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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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제목은 첫 섹스를 나누던 밤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에게 올리버(아미 해머)가 속삭인 말이다.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내 이름으로 너를 부를게.”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인 원작 소설에서 엘리오는 회고한다. “태어나서 처음 해본 일이었다. 그를 내 이름으로 부르는 순간 나는 그전에, 어쩌면 그 후에도 타인과 공유한 적 없는 영역으로 들어갔다.” 피아의 구분이 사라지고, 자아의 국경을 넘어서도록 추동하는 사랑의 속성에 관해서는 <사랑니>(2005)의 조인영(정유미)도 “난, 다시 태어나면 이석이 되고 싶어”라고 토로한 바 있다.

안드레 애치먼의 원작을 제임스 아이보리가 시나리오로 각색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초반은, 당사자도 구경하는 관객도 긴가민가한 추파의 교환이다. 열일곱살 엘리오는, 교수인 아버지를 도우며 이탈리아에서 여름을 보내러 온 스물넷의 청년 올리버에게 걷잡을 수 없이 사로잡힌다. 총명하고 조숙한 소년은 말을 너무 많이 쏟아내는가 하면 마음의 동요를 들킬까봐 어깨만 으쓱해놓고 후회하기도 한다. 고개나 시선을 돌리지 않아도 시야에 올리버를 둘 수 있는 자리가 엘리오가 있는 곳이다. 지나치게 쿨하게 굴면 쿨하지 않아지고 과하게 무뚝뚝하면 애정의 반증이 되어버릴까봐 엘리오는 머릿속으로 끝없이 체스의 수를 연구한다. 한국어 번역판 <그해, 여름 손님>을 읽으며 나는 이만큼 신열에 뜬 묘사를 소설가라는 사람들은 회상이나 상상만으로 생생히 쓸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충격을 받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행갈이. “나는 기차를 보고 싶은지 물었다. ‘나중에. 아마도. ’ 잘 보이려고 애쓰는 내 부적절한 노력을 알아차리고 그 자리에서 밀어내는 듯한 정중한 무관심이었다./가슴이 쓰렸다.” 하지만 더 큰 놀라움은 <그해, 여름 손님>이 소위 영화화할 만한 건더기가 거의 없어 보이는 소설이라는 점이었다. 각색자 제임스 아이보리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엘리오의 내면에서 들끓는 감정을 정밀 묘사하는 문장이 대부분인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 없는 영화로 만들었다. 심지어 아무 정보 없는 관객이라면 러닝타임 30분이 지나도록 엘리오가 올리버를 열망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다(소설은 여름 손님이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매료된 엘리오의 마음을 분명히 한다). 다행히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만든 사람들은 인생 최초로 몸과 마음을 던진 사랑을 경험했던 시간을 아직 자세히 기억하는 성인들이다. 영화는 티나는 엘리오의 시점숏이나 클로즈업을 쓰지 않고도, 욕망의 제스처와 움직임으로 충만하다. 변모하는 자신의 몸을 생경해하며 체모에 입김을 불고 쓰다듬어보는 무료한 한낮, 시선을 감추려 짐짓 걸치는 선글라스, 돌기둥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걷는 동안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해 소년을 행복하게 하는 올리버의 이미지. 사랑이라는 사건 없는 사태. 사내들끼리의 흔한 부딪힘인 척 올리버의 주위를 겅중겅중 맴돌다가 등에 올라타고 다시 화들짝 뒷걸음치는 엘리오는 마치 어린 골든 리트리버 강아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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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귀족 같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다 소리 없이 중얼거리고 말았다. 올리버가 극중에서 말하듯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주요 배경인 이탈리아 마을은 낙원에 가깝다. 햇살도 복숭아도 바람도 소년의 첫사랑을 응원한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1인칭 해설만 없는 것이 아니다. 소설의 엘리오는 동성을 욕망한다는 사실이 가져다줄 결과를 그려보고 몇 차례 몸서리치는 반면, 영화 속 두 연인은 그런 비굴한 염려는 자신들에게 가당치 않다는 듯 행동한다(사실 2017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의 마음에 더 거리끼는 부분은 원작보다 더 커 보이는 엘리오와 올리버의 나이 차이다). 엘리오를 포함해 극중 어떤 인물도 게이 커플을 적발하거나 제지하지 않으며, 손님으로 게이 커플이 등장하지만 1980년대라는 시간적 배경을 고려하면 이상하리만큼 에이즈의 공포는 언급되지 않는다. 엘리오와 올리버는 대낮의 풀밭에서 강변의 바람을 느끼며 키스한다. 오랫동안 LGBT영화의 클리셰였던 폭로와 굴욕의 장면은 도래하지 않고 통상 금지하는 권력의 얼굴인 아버지는 오직 아들을 축복한다. 비단 소수자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멜로드라마의 동력은 장애와의 투쟁에서 나오는 법인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방해하는 외적 변수를 몽땅 제거하고, 사랑의 내적 흐름만으로도 충분한 영화적 모험을 연출할 수 있음을 작심하고 증명한다. 비현실적인 자유와 평화는 영화 속 세계에서 시공의 지표를 자꾸 지워버린다. 도입부에서 분명 1983년이라는 연도를 명시되지만 관객은 댄스파티에서 팝음악이 나올 때까지 시대를 잊는다. 지역도 시인 퍼시 셸리가 익사했다는 스치는 대사가 슬쩍 암시할 따름이다. 엘리오의 아버지와 올리버는 헬레니즘 시대의 미술품을 연구하고, 가족과 손님들이 나누는 대화는 영어, 이탈리아어 등 네댓개 언어와 고대어를 갈아탄다. <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과 묶어 루카 과다니노의 쾌락주의(hedonism) 3부작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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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회 오스카에서 제임스 아이보리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각색상을 수상했다. 그는 내게 반전의 감독이다. <전망 좋은 방> <하워즈 엔드> <남아 있는 나날>의 그를 처음에는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출신 영국 감독, 고상한 취미의 주류 감독이거니 했다. 알고 보니 머천트 아이보리 프로덕션은 미국 출신 아이보리와 인도 출신 제작자 이스마일 머천트, 독일에서 태어나 인도인과 결혼한 작가 루스 프라워 자발라 3인 체제의 3대륙 합작 영화사이자 가장 수명이 긴 독립영화사였고 아이보리와 머천트는 44년간 동업자이자 커플이었다.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나 아름다운 물건을 애호하는 미술감독 지망생이었던 1928년생 제임스 아이보리는 영화보다 이탈리아에 먼저 매혹됐다. 그리고 아버지의 지원으로 찍은 베니스에 관한 30분짜리 다큐멘터리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그는 커밍아웃의 가능성조차 꿈에도 떠올리지 못한 세대이기에 오히려 번민이 적었던 성소수자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최근의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한 감회를 묻는 <할리우드 리포터> 기자의 질문에 아이보리는 “나와 이스마엘은 부부였고 결혼할 필요가 없었다”고 간략히 답하기도 했다. 많은 관객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남성끼리의 사랑을 그린 아이보리의 전작 시대극 <모리스>와 연관짓는다. 동성애가 징벌받지 않고 끝나는 원작 <모리스>를 E. M. 포스터는 생전에 출간하지 못했고 영화화되었을 때도 같은 이유로 퀴어 관객에게 사랑받았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노장의 반응도 덤덤하다. “문화적 억압 때문에 욕망을 가두는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로 보면 <모리스>는 <전망 좋은 방>과 쌍둥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이탈리아에 관한 영화라는 점에서 오히려 <전망 좋은 방>과 가깝다고 본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쏟아진 호응에 대한 그의 간결한 해석에 나는 그만 머쓱해졌다. “<전망 좋은 방>과 마찬가지다. 예쁜 배경에서 펼쳐지는 미인들의 에로틱한 사랑 이야기니까.”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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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 펀치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의 주인공은 검은 머리 아가씨(하나자와 가나)와 그녀를 짝사랑하여 ‘최눈알(최대한 눈앞에 알짱거리기) 작전’을 구사하는 같은 대학의 선배(호시노 겐)다. 낯선 사람과 사귀고 새로운 일을 경험하는 데 주저라곤 없는 아가씨는 소심한 선배보다 언제나 한발 앞에 있고 선배는 덩달아 모험에 휘말린다. 하지만 알코올 기운으로 흥청대는 교토의 밤거리에서 아가씨는 정말 안전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될 무렵 아가씨는 어머니에게 배운 ‘친구 펀치’를 성추행을 시도하는 취객에게 날려 관객을 안심시킨다. “세상엔 몹쓸 놈이 많고 변태도 많고 변태인 몹쓸 놈도 많다”며 어머니가 전수한 ‘친구 펀치’는, 엄지를 먼저 접고 네 손가락을 말아 주먹을 쥠으로써 파괴력을 완화해 믿거나 말거나 궁극적으로 폭력의 연쇄를 막는 평화의 응징법이다. 무엇보다 주먹 모양이 마네키네코(복고양이)처럼 귀여워진다는 장점이 있다고 영화는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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