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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철 편집장]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스파이크 리의 수상을 축하하며
주성철 2018-05-25

“그럼 저도 더욱 분발해서 열심히 영화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지난해 가을 <씨네21>에서는 일본정부관광국의 지원으로 허지웅 작가와 함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촬영지 투어를 한 뒤, ‘복을 나눈다’는 의미의 그의 영화사 ‘분복’ (分福) 사무실을 방문하여 직접 인터뷰한 적 있다. 나 또한 그 투어에 동행하여 고레에다 감독이 거의 ‘나를 인터뷰하러 오기 전에 반드시 들렀다 오시오’라는 식으로 직접 추천한 영화 촬영지들을 돌아다녔는데, 영화 속 첫째 사치(아야세 하루카)와 막내 스즈(히로세 스즈)가 속마음을 털어놓던 기누바리산 정상을 오를 때는 정말 힘들었다. 아마도 지난해에 가장 고되게 운동한 날이었던 것 같다. 자매가 힘들게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영화에 담기지는 않은) 속깊은 대화를 나눴다고 상상하면 나름 의미 있는 곳이지만, 가마쿠라와 에노시마를 둘러보고 하루 만에 거기까지 등정(?)하고 오라는 건 솔직히 좀 아니다 싶었다.

드디어 다음날 인터뷰 자리에서 그런 원망을 표출했더니 “그냥 추천만 했을 뿐인데 정말 다녀오실 줄을 몰랐습니다”라며, 마치 그는 주방장 추천메뉴를 모르는 주방장처럼 특유의 해맑은 눈망울을 하고는 깜짝 놀랐다. 아무튼 그때 그는 <세 번째 살인>(2017)의 연말 개봉을 기다리는 중이었고,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만비키 가족>을 작업하고 있었다. 나와 허지웅 작가를 포함해 여러 <씨네21> 직원들과 일본정부관광국 관계자들이 산 정상까지 힘들게 갔다온 얘기를 들은 그는, 사과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열심히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다. 당시 우리의 투지가 그를 자극하여 지금의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니겠지만, 뭐 적어도 티끌만큼의 영향 정도는 주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아무튼 그의 황금종려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한편으로 <블랙클랜스맨>으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스파이크 리의 복귀(?)도 감격적이다. 서른 즈음에 <똑바로 살아라>(1989)로 혜성처럼 등장했던 그도 어느덧 환갑을 넘겼다. 박찬욱 감독의 동명 작품을 리메이크한 <올드보이>(2013)를 보고 실망해서는 그저 한물간 감독 정도로 생각했던 그가 이렇게 다시 돌아올 줄은 몰랐다.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KKK단에 비밀잠입 수사를 했던 흑인 경찰 이야기라는 얘기에 문득 블랙스플로이테이션 무비의 걸작, 그리고 무려 <대부>(1972)보다 한해 앞서 만들어졌던 <샤프트>(1971)가 떠올랐다. 영화에서 잠복근무를 하던 흑인이 백인 범죄자들에게 들키게 되는데, 발각되어 끝났다고 생각한 그를 본 백인 남자의 반응이 압권이다. “어이, 커피 둘, 콜라 하나, 빨대도 가져와!” 그 흑인이 잠복근무 중인 걸 모른 채 그냥 눈에 보이는 흑인한테 자기 심부름을 시킨 것이다. 그렇게 그 흑인은 심부름한 물건을 가지고 자연스레 인질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 내부 상황도 살피고 심지어 팁도 챙기게 된다. 당시 인종차별의 사회상과 서스펜스를 결합한 놀라운 장면이었다.

물론 보지도 않은 영화를 가지고 이래저래 상상의 나래를 편 것이라, 나중에 직접 영화를 보게 되면 어떨까 싶다. 두 영화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화정, 송경원 기자의 이번 1157호 칸국제영화제 특집을 참고해주기 바란다.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음주에도 <더 하우스 댓 잭 빌트>의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요메드딘>의 아부 바크 샤키 감독, <앳 워>의 스테판 브리제 감독 인터뷰와 함께 결산 기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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