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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철 편집장] 김기덕 감독님, 법 뒤에 숨지 마세요
주성철 2018-06-08

결국 김기덕 감독이 <PD수첩>을 고소했다. 자신을 강제추행치상 등의 혐의로 지난해 고소했던 여배우 A에 대해 무고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하고, 지난 3월 김기덕 감독 관련 의혹을 보도한 MBC <PD수첩> 1145회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제작진 및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한 다른 여배우 2명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당시 방송에서 여배우 A를 비롯해 다른 여배우 B, C가 김 감독의 성관계 요구 및 성폭행에 대해 폭로했다. <PD수첩> 제작진에 따르면, 당시 김감독은 이와 관련해 취재에 응하지 않았으며 반론권을 전혀 행사하지 않았다.

당시 방송을 보면서도, 지금 김기덕 감독의 고소 사실을 접하면서도 만감이 교차한다. 당시 <씨네21>도 이와 관련한 취재를 이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그 반론권 보장과 팩트 체크에 매진하는 가운데 <PD수첩>에서 먼저 보도가 됐다. 그리고 취재원이 일부 겹치는 관계로 일단 취재는 보류하기로 했다. 같은 사건을 함께 취재했던 매체 입장에서 먼저 기사화하지 못해 아쉽긴 했지만, 그 빈틈없는 취재력과 용기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 또한 긴 시간 취재하며 느꼈지만, 피해자들의 진술의 일관성과 사실성은 어지간한 영화인들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신빙성 가득한 내용들이었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 그렇게 느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15년 넘게 한국영화 현장을 취재하며 나는 그의 6번째 장편영화인 <수취인불명>부터 <나쁜 남자> <해안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사마리아> <>까지 연달아 현장 취재를 다녔다. 이중에는 그가 ‘취재진이 방문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촬영현장을 지휘했던 영화도 포함되며, 또 이중 몇번은 그가 촬영을 끝내고 술자리에 동석했던 1박2일 현장이었다. 당시에는 한 영화에 대해 촬영 전 인터뷰, 촬영현장 방문 인터뷰, 촬영 후 개봉 인터뷰까지 이어졌기에 그를 족히 20번 가까이 만났던 것 같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그리고 그의 영화에 대한 내 관점과 태도가 달라졌다면 달라진 것이리라.

이렇게까지 쓰고 보니, 나 또한 그의 고소 근거인 ‘증거 없는 명예훼손’의 대상자일지도 모르겠다. 또 이제 와서 양심의 가책도 없이 이런 얘기를 꺼낸다는 사실에 대해 부끄럽고 참담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피고소인 분들에게 조그만 도움이라도 된다면, 현역 영화매체 종사자 중 가장 오래 일한 사람이라는 껍데기뿐인 자부심을 이럴 때만이라도 굳이 드러내고 싶다. 이번 고소 건을 보면서 그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씁쓸하긴 하지만)도 싹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가 입증 가능한 법적 책임만큼이나 도의적 책임의 무게를 깊이 깨닫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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