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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철 편집장] 북한영화를 아십니까
주성철 2018-06-22

“50년 만에 북에서 왔습네다!” 북한에 납치됐던 신상옥 감독이 1985년에 만든, 북한 최초의 SF영화이자 당시 북한에서 최고 흥행을 기록했던 <불가사리>가 한국에서 개봉했을 때의 영화 포스터 카피 문구다. 예고편에는 “남한 동포 여러분 반갑습네다! 분단 반세기 만에 북에서 왔수다”라는 자막도 더해졌다. 쇠를 긁어 먹으면서 자란다는 전설의 동물 불가사리가 조정의 압제에 짓눌려 지내는 민중의 봉기를 돕는다는 내용으로, 민중혁명의 사회주의 이념을 괴수영화를 통해 재구성한 전형적인 프로파간다 영화라 할 수 있다. 일본 도호영화사의 <고지라> 특수효과팀이 참여해 화제가 됐으며, 신상옥 감독이 1986년 3월 북한을 탈출하면서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가 정건조 감독에 의해 완성됐다. 이후 일본에도 수출되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롤랜드 에머리히의 <고질라>(1998)보다 더 나은 흥행 성적을 거둬 화제를 모았고, 한국에서는 2000년 6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문화 교류 활성화 방안의 첫 삽으로, 같은 해 북한영화 <불가사리>의 일반 개봉을 허가하여 7월 22일 개봉했다.

당시 월간 영화잡지 <키노> 2000년 8월호에 <불가사리>에 대한 글 ‘평양 1985년, 서울 2000년’을 기고했던 정성산 작가(평양 연극영화대학 영화연출학과 출신으로 북한군 2군단 정치부 선전대 작가 겸 연출가였으나 1994년 남한방송 청취를 이유로 체포된 이후 북한 정치범 수용소를 탈출하여 1995년 남한에 귀순하였다)에 따르면, 북한은 일주일에 하루를 영화감상회 날로 지정해 의무적으로 영화를 보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고 한다. 그날이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공장의 대회의실, 학교의 대강당, 마을의 문화회관에 모여 영화를 봐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가 김 부자의 우상화 다큐멘터리, 혹은 혁명영화라고 일컬어지는 항일영화, 전쟁영화와 같은 따분하고 지루한 영화들이라 북한 영화관은 항상 파리를 날리고 있었”는데 “<불가사리>가 상영되는 영화관은 매진에 매진을 거듭했다”고 한다. 그렇게 북한영화 개봉 1호 <불가사리>가 개봉한 것이 무려 20여년 전의 일이다. 혹시나 이후 북한 장르영화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유튜브에서 감상 가능한 <명령 027호>(1986), <평양 날파람>(2006) 등을 통해 호쾌한 택견 액션을 맛보길 바란다.

이번호 특집은 ‘북한영화’다. 지난 10년의 깜깜한 터널을 지나 드디어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다시 열리며, 남북 문화 교류의 새로운 물꼬가 터지지 않을까 기대가 큰 상황이다. <불가사리> 개봉에 이어 2003년 ‘남북영화교류추진특별위원회’가 만들어진 후 남북한 영화인, 촬영지 등의 교류를 비롯해 남한 영화인들의 평양 방문, 국내 제작사가 북측과 연계하여 추진하는 기획개발 작품에 대한 기획개발비 지원 등의 계획이 마련되며 <간 큰 가족>(2005)과 <황진이>(2007)가 북한에서 촬영을 하기도 했으나, 안타깝게도 그 흐름은 이후 완전히 끊어져버렸다. 남북 영화 교류의 시계를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 이제부터 남북 영화 교류의 미래가 어떠할 것인지에 대한 전망과 더불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북한영화의 역사와 현재를 살펴보고,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 바라본 스크린 속 북한의 모습도 덧붙였다. 그렇게 변화는 도처에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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