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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철 편집장] 8월 14일, ‘위안부’ 기림일의 기억
주성철 2018-08-17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변영주 감독이 말했다. JTBC <#방구석1열> 8·15 특집 ‘아직 끝나지 않은 가슴 아픈 이야기’ 편에서, 과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관한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 시리즈를 만들었던 그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할머니들이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이 있다. 한국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일본 욕이 아니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이 할머니들을 존경하는 마음이 아닐까? 우리나라만큼 성폭력 피해자에게 예의 없는 나라가 어디 있나?”라고 말했다. 그와 함께 삽입된 영상은 김현석 감독의 <아이 캔 스피크>(2017)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옥분(나문희)이 뒤늦게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뒤, 엄마의 산소를 찾아 “엄마, 왜 그랬어? 왜 그렇게 망신스러워하고, 아들 앞길 막힐까봐 전전긍긍 쉬쉬하고…. 내 부모, 형제마저 날 버렸는데 내가 어떻게 떳떳하게 살 수 있겠어”라고 한탄하는 장면이었다.

지난 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실상을 세상에 알린 할머니들의 용기를 기리는 ‘기림의 날’이었다. 바로 1991년 8월 14일은 고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최초 공개 증언한 날이다. 민간에서 기념해오던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을 정부가 국가기념일로 제정해 처음으로 공식 기념행사를 가지기도 했다. 여기서 < >를 쓰고 계속 작은따옴표를 붙이는 이유는 표기법을 얘기하기 위해서다. ‘위안부’라는 표현은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종군(從軍)위안부에서 비롯된 용어이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가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니라 일본군이 ‘위안부’라고 불렀다는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위안부’ 앞에 일본군을 명시해주어야 올바른 표기법이다. 물론 (끊임없이 일본 정부가 반발하고 있는) 성노예라는 단어로 변경하거나 최소한 병기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바로 이날, 민규동 감독의 <허스토리>도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영화 속 문정숙 사장 역의 배우 김희애가 참석한 특별 상영회도 열었다. 여전히 뜨겁게 계속되고 있는 <허스토리>의 단관 행사와 민규동 감독 인터뷰는 <씨네21> 1167호 기사(<허스토리> 단관 현장, ‘허스토리언’들이 모인 이유)를 참조해주기 바란다.

그처럼 여러모로 뜻깊은 날이 될 뻔했으나, 여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바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1심 무죄 선고였다. 아직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선고일인 8월 14일의 분노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게다가 같은 날, 법무부가 발표한 광복절 가석방 대상자 889명 중에는 전자발찌 대상자 120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전주인 8월 7일에는, 김기덕 감독과 배우 조재현의 성폭력 의혹을 제기한 ‘거장의 민낯’ 편의 후속인 <PD수첩> 1163회 ‘거장의 민낯, 그 후’에서도 그들의 뻔뻔하고 파렴치하기 이를 데 없는 낯짝을 보아야만 했다(이에 대한 기사는 이번호 10쪽 ‘국내뉴스’ 참조). <허스토리> 포스터에서 ‘세상은 안 바뀌어도 우리는 바뀌겠지예’라는 문구처럼 진짜 세상은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지난해 3월, 특집 ‘대선 후보에게 묻다’에서 당시 안희정 지사와의 인터뷰가 실린 <씨네21> 1096호 표지는 한석규김래원이 죄수복을 입고 등장한 <프리즌> 표지였다. 언젠가 그 표지의 홈페이지 주소가 ‘성지 순례’의 장소가 되길. 그렇게 범죄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허스토리>의 배정길 할머니(김해숙)는 법정에서 마지막으로 소리쳤다. “그러니까 사과를 해라. 잘못했습니다, 하고. 그래야 짐승에서 인간이 된다. 지금 기회를 줄게. 인간이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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