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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크레이지 서칭 아시안
김혜리 2018-09-05

<제인>

올해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제인>은 선구적 동물행동학자 제인 구달에 관한 영화다. 1960년대 탄자니아 곰비 지역에 거점을 만들고 침팬지들에게 천천히 다가가는 젊은 제인 구달의 모습을 담은 화면은 “혹시 재연인가?”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드라마틱하다. 필터를 댄 최근 장르영화의 클립이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다. <제인>의 본론을 이루는 이 영상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아카이브에 잠들어 있던 100여 시간의 무성 16mm 푸티지를 편집해 음향과 음악을 더한 결과다. 촬영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구달에게 파견한 카메라맨 휴고 반 라윅인데 뒷날 그가 제인 구달의 첫 남편이 됐다는 사실은, 영상에 흐르는 관심과 친밀감을 설명한다. 미래의 연인 눈에 포착된 제인 구달은 정글에서도 내면의 고요를 유지하는, 다정하고 냉철한 인간이다. 반 라윅의 필름은 1965년에 이미 <미스 구달과 야생 침팬지>라는 영화로 종합된 바 있으나 브렛 모건 감독은 최근에 재발견된 대량의 자료로 다큐멘터리의 ‘내러티브’를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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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포비아>(2014)를 본 다음이었던 것 같다. 이제 사람들의 엄연한 리얼리티인 사이버스페이스를 어떻게 영화로 재현할 것인지는 감독들의 보편적 숙제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니시 차간티 감독의 <서치>는 모든 사건이 스마트폰, 랩톱, 데스크톱, CCTV 등 디지털 디바이스 스크린 위에서 이뤄지는 ‘스크린 무비’다. 인물의 행위뿐 아니라 사건이 진행되는 2017년 5월 11일부터 약 2주동안 바깥세상 돌아가는 뉴스도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전달된다. 스크린 무비는 이미 많은 단편과 몇개의 장편이 실험한 양식이지만 <서치>의 경우 “보통 영화가 구사하는 기법을 다 활용하겠다”는 감독의 결의가 뚜렷하다. 한 사람이 복수의 디지털 기기를 쓰는 현실을 반영해 편집으로 다양한 스크린을 오가고, 숏과 리버스숏, 페이드아웃과 페이드인이 있으며 화면 밖 음악도 적극적으로 썼다. 스크린 무비에 대해 영화 팬들이 심드렁한 이유는 형식적 곡예를 위한 곡예에 그치기 쉬워서인데 <서치>는 이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한다. 우선 차간티 감독의 각본은 가벼운 인간관계의 상징으로 통해온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을 빌려 애도라는 제일 무거운 감정을 다룬다. 데이빗 김(존 조)과 파멜라 김(사라 손)의 가족사를 몽타주한 오프닝 시퀀스는 회의적이던 관객을 5분 만에 잘 알지도 못하는 인물 때문에 훌쩍이게 함으로써 이 영화가 추구하는 감정적 동일시 수준을 예고한다. 뿐만 아니라 <서치>는 오늘날 관객에게 컴퓨터와 관련된 경험이 이미 노스탤지어의 영역에 속한다는 사실을 간파한다. 김씨 가족의 컴퓨터를 새롭게 설정하는 날이 배경인 오프닝은 (추억의) 모뎀 연결음으로 시작해 윈도XP 월페이퍼로 이어진다. <보이후드>(2014)에서 게임기와 컴퓨터, 휴대폰 기종이 연도의 표식 노릇을 했듯, 세월이 흘러 아내가 암을 극복했다가 다시 쓰러지고 딸 마고(미셸 라)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기까지 컴퓨터의 기종과 OS는 조용히 업그레이드되며 가족의 모든 것을 기록한다. 관객은 잊었던 구식 소프트웨어 아이콘을 스크린 구석에서 발견하며 뜻밖의 감흥을 느낀다. 예전의 스크린 무비들도 기본적으로 시도한 바이지만, <서치>의 제작진은 ‘삭제’(delete) 키와 백스페이스, 망설임을 담은 문자 말풍선의 연속점에 담긴 심리를 극대화한다. 죽은 아내가 너무 사랑스럽게 찍힌 동영상을 휴지통에 버리는 소리, 딸의 전화를 듣지 못한 스크린세이버의 침묵. 윈도를 최대화하거나 밀어버리는 마우스 동작에 실린 감정은 관객에게 가닿는다. “10년 전이라면 이 영화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라는 제작진의 말은, 지난 10년간 디지털 리터러시(독해력)가 얼마나 폭넓고 두텁게 일반인에게 형성됐는지 새삼 깨닫게 만든다. 이 영화 속의 페이스북, 지메일, 텀블러, 유튜브 페이지와 메뉴는 구경거리 신문물이 아니라 관객 대다수가 매일 일정 시간 삶을 경험하는 방이다. 오늘날 현실에서 나의 친구나 가족이 사라졌다 해도 우리는 밖으로 뛰쳐나가는 대신 구글 검색을 하고 실종자의 노트북 비밀번호를 알아내려 애쓸 터다. 실종자를 찾을 단서가 될, 평소 그가 세계와 접촉한 흔적이 있는 곳은 물질세계가 아니라 컴퓨터 방문기록 메뉴이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무엇보다 <서치>가 스릴러로서 실패하지 않았다는 징표는, 15분 이내에 관객이 지금 유별난 포맷의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수수께끼 풀이에 집중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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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킹 과정이 궁금해서라도 블루레이 출시가 기다려지는 영화가 해마다 서너편씩 있는데 <서치>도 그렇다. 일단 시나리오부터, 공간과 시간을 지정하고 대사와 지문을 쓰는 일반적 형식으로 작성하기 불가능하다. 대신 아니시 차간티 감독은 화면의 텍스트와 커서 움직임, 그에 따른 시선의 지시가 포함된 ‘책’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스크린숏 소프트웨어 등을 써서 영화 전체를 애니메틱스(일종의 동영상 콘티)로 구현해, 촬영 2일 전에 전 스탭과 배우들에게 시사했다고 한다. 촬영현장과 결과물의 거리가 큰 만큼 감을 잡는 데 필수적 과정인 셈이다. 닉 존슨과 윌 메릭, 두명의 편집기사는 짐작과 달리 스크린을 캡처하는 방식을 거의 쓰지 않고, 온갖 카메라(1170호 <서치> 기획 기사 참조)로 찍은 실사를 이펙터, 포토숍 등 프로그램을 거쳐 애니메이션 방식으로 종합했다고 한다. 편집 작업에는 총 2년이 소요됐다. 시도는 해봤지만 역시 말로 이해하긴 무리다. 메이킹 필름을 기다리는 수밖에. 퍼포먼스 캡처 같은 연기의 신(新) 장르는 아니라 해도, 아무것도 없는 까만 랩톱 스크린 앞에서 대부분의 피지컬 연기를 의자에 갇혀 해낸 존 조도 창의력 대장감이다. 게다가 영화 내내 지속되는 극단적 클로즈업은 이목구비 왜곡이 수반돼 배우가 멋져 보이긴 포기해야 할 앵글이다. 극중 시간 순서로 촬영했는지는 미지수지만, 확실히 영화 후반의 존 조는 웹캠 연기의 고역 탓인지 부쩍 늙어 보여 영화에 사실성을 더한다. 농담은 접어두고 <서치>에서 존 조의 부성 묘사가 마음을 끄는 까닭은 따로 있다. 데이빗은 아이를 잃은 아버지지만 비슷한 상황에 처한 영화 속 아버지들처럼 “널 찾아내 죽여버리겠다”는 복수심에 휘둘리는 마초가 아니다. 데이빗은 오프닝 몽타주가 보여준 대로 여전히 애정 깊은 아버지인 동시에 자책과 분노를 다스리며 경찰과 협력해 딸을 위한 최선을 찾아내려는 상식적인 남자다.

미국쪽 보도에 따르면 <서치>는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가 주역을 맡은 최초의 메인스트림 스릴러라고 한다. 주인공 가족이 한국계 미국인임을 표내는 요소는 죽은 아내가 잘 만들었던 요리 김치 검보가 전부다. 쿵후나 요가 달인이 아닌 아시아계 인물이 미국의 영화, 드라마에 나오는 모습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하지만 아시아계가 주인공인 경우 그 캐릭터는 <빅 식>처럼 가족의 문화적 테두리를 벗어나 외부로 나아가는 여정을 취하곤 한다. 반면 데이빗 김의 가족은 그냥 미국 시민이고 문화 충돌은 영화의 소재가 아니다. 마고가 학교에서 외톨이였다는 사실이 발견되지만 인종차별 탓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어제 업로드된 NPR 팟캐스트 공개방송 <이츠 빈 어 미닛>(It’s Been a Minute)에 출연한 존 조와 인도계 아니시 차간티 감독은 <서치>가 아시안-아메리칸 무비인가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동시에 예스와 노라고 답해 청중을 즐겁게 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존 조가 긍정하고 차간티 감독이 부정한 이유가 대동소이하다는 점이다. 존 조는 굳이 아시안-아메리칸 영화라고 규정할 필요가 없기에 더욱 아시안-아메리칸 영화로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덧붙여 <서치>는 개인이 아니라 복수의 주요 인물이 한국계인 가족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아시안-아메리칸 영화라는 이름도 적당하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한편 차간티 감독에 의하면 <서치>의 인종 구성은 데이빗 역으로 제일 먼저 원했던 존 조가 한국계여서 자연스럽게 주변을 한국계 인물이 둘러싸게 됐을 뿐이며 박스오피스에서 파란을 일으키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처럼 마이너리티 관객이 특별히 응원할 영화도 아니다. 둘 중 누가 말했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다음의 멘트가 요점을 전한다. “아시아계 배우가 할리우드 스릴러영화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별도의 주석은 필요 없다.”

<플래니테리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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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론

<플래니테리엄>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 파리. 미국인 로라(내털리 포트먼)와 케이트(릴리 로즈 뎁) 자매는 동생의 영적 능력을 바탕으로 크고 작은 교령회를 열며 살아간다. 유대계 영화 제작자 앙드레 코벤(에마뉘엘 샐린저)은 자매로부터 위안을 찾고, 언니 로라를 배우로 캐스팅해 심령현상을 담은 획기적 영화를 찍을 계획을 세운다. 실제로 영혼과 감응하는 인물이 아니라 그 현상을 청중에게 설득하는 인물이 배우로서 더 좋은 재목이라는 전제가 흥미롭다. 마침내 카메라 연기를 해낸 로라는 여운 속에 전율한다. “마치 내가 거기에 없는데 다 드러난 것 같았어요.” 그때까지 평범해 보였던 감독이 현답을 내놓는다. “인물의 감정을 다 이해해야 연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사람들은 감정을 원하는 만큼 강하게 느끼지 못해 연기를 하고 그것을 찍어 영화로 만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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