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편집장이독자에게
[주성철 편집장] 추모 임영동 감독, 변방의 대가들을 돌아보며
주성철 2019-01-04

‘형나경’의 원조 감독이 세상을 떴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에서 언더커버(위장잠입경찰) 현수(임시완)가 재호(설경구)에게 자신이 경찰이라고 고백하는 “형, 나 경찰이야” 장면은 그로부터 30년 전 임영동 감독의 <용호풍운>(1987)에서 볼 수 있었다. 언더커버로 활동하던 추(주윤발)가 그와 깊은 우정을 나눴던 조직원 호(이수현)에게 “나도 경찰이야” 하고 고백하는 것. 물론 <용호풍운>에서는 마지막에 경찰의 포위망에 걸려든 뒤 그런 순간이 찾아왔다는 점에서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그리고 현수는 정체가 발각되어 최후를 맞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선택한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는 것도 중요한 차이점이다. 어쨌건 <용호풍운>은 쿠엔틴 타란티노가 훗날 <저수지의 개들>(1982)을 만들며 ‘거의 베꼈다’고 고백했을 만큼 언더커버 영화의 진정한 원조라 부를 만한 작품이다. <무간도> 시리즈에 대해 ‘언더커버의 원조’라고 지겹도록 홍보도 하고 기사도 나왔지만(정작 <무간도>의 유위강 감독이 바로 <용호풍운>의 촬영감독이었다), 그리고 이전에도 언더커버 영화는 있었지만 <용호풍운>처럼 단순한 직무 수준의 잠입이 아니라 아예 조직 안에서 살아가는 경찰을 본격적으로 그린 경우는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의 정체를 속이고 위장 잠입한 첩자, 언더커버를 중국어로는 ‘워디’(臥底)라고 부른다. <용호풍운>은 워디 영화의 진짜 원조나 다름없다.

오우삼(1946년생), 서극(1950년생), 두기봉(1955년생) 감독과 더불어 홍콩 누아르의 4대 천왕으로 꼽히는 임영동(1955년생) 감독이 지난해 12월 29일 향년 63살의 나이로 아깝게 세상을 떴다. 작품 수로 보나 영향력으로 보나 앞서 언급한 세 감독과 비등한 필모그래피를 쌓은 것은 아니지만, <용호풍운>은 물론이고 개인적으로 홍콩 누아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멜로드라마라 생각하는 주윤발, 종초홍 주연의 <반아틈천애>(국내 개봉 제목: <타이거 맨>, 1989) 등 개별 작품으로 보자면 다른 세 감독 못지않은 작품들을 만들었다. 가령 <첩혈쌍웅>(1989)을 맨 처음 봤을 때, 범죄자와 경찰 사이에서 주윤발과 이수현의 역전된 관계라는 점에서 <용호풍운>의 아류라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다. 그처럼 한때 그를 ‘홍콩의 새뮤얼 풀러’ 같은 감독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했었다.

임영동은 홍콩 TVB 방송국 연예인 훈련반 출신으로 1955년생 동갑내기 주윤발, 임달화 등과 동기이며 두기봉이 한 기수 아래 후배다. 이후 임영동과 두기봉이 연기가 아닌 연출로 방향을 바꾼 데 대해 ‘넘사벽’ 주윤발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아무튼 당시 임영동과 사실상 가장 가까웠던 주윤발은 오우삼의 <영웅본색>(1986)을 도화선으로 하여 1986년에 11편, 1987년에 11편, 1988년에 9편, 1989년에 7편, 그러니까 거의 한달에 한편씩 영화를 찍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런 시절을 한참 뒤로 하고, 김용 작가가 지난해 10월 31일 향년 94살의 나이로 세상을 뜨고, 11월 21일에는 이소룡과 출발을 함께했던 그 유명한 골든 하베스트의 설립자이자 홍콩영화계의 대부 레이먼드 초우가 향년 91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90살 넘게 살았던 전설의 작가와 제작자의 죽음에 더해 이제 겨우 환갑이 지난 임영동의 사망까지, 추모의 마음과 더불어 영화 매체 입장에서는 죄송하게도 ‘올해 또 얼마나 많은 추모 기사를 써야 할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아무튼 결론은, 힘을 내어 새해를 시작하겠다는 <씨네21>의 다짐을 전하는 바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