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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철 편집장] 시나리오작가 특집에 부쳐
주성철 2019-03-15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시나리오작가들의 101가지 습관>은 저자 칼 이글레시아스가 14명의 유명 시나리오작가들을 길게 인터뷰하여 ‘글쓰는 환경 만들기’, ‘글쓰는 습관’, ‘시간 조절’, ‘원고 고쳐 쓰기’ , ‘인간관계 만들기’, ‘에이전트 구하기’, ‘프로작가처럼 행동하기’ 등 각각의 주제에 맞게 내용을 편집해서 엮은 책이다. 집필 스타일과 환경이 저마다 다르기에 특정 주제에 대해 말이 길 때도 있고 짧을 때도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유독 ‘글 막힘’ 주제에서는 하나같이 말이 많다는 것이었다. 세상 그 어떤 대단한 시나리오작가라도 역시 글이 막힐 때가 가장 답답하고 괴롭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럴 때 대부분의 작가들이 내놓은 해법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지 말고 ‘그냥’ 아무 글이라도 쓰라는 것이었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아이디어는 반드시 떠오른다는 얘기다. <의뢰인>(1994), <로스트 인 스페이스>(1998) 등의 시나리오를 쓰고 <뷰티풀 마인드>(2001)로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한 아키바 골즈먼은 “그냥 글을 써라. 그냥 좋지 않은 글이라도 써라”라고 했다.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2000), <베놈>(2018) 등을 썼던 스콧 로젠버그는 그에 더해 “가끔 찾아오는 그런 시간들이야말로 바로 내 최고의 작품들이 배출되는 시간”이라고 했다.

정말 지겨운 얘기겠지만, 시나리오작가 지망생들에게 반복해서 쓰는 것만큼 좋은 글쓰기 훈련은 없다.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스티븐 킹은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한다”며 “이 두 가지를 슬쩍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름길도 없다”고 단언했다. 물론 그가 전문 시나리오작가는 아니지만, 그렇게 꾸준히 하루에 10페이지씩(200자 원고지 기준 10매) 3개월 동안 쓰면 자동적으로 작품 한편 분량이 나온다고도 했다. 거기에 더해 스티븐 킹은 글이 막힐 때, 어렸을 적 레이 브래드버리나 H. P. 러브크래프트처럼 쓰고자 노력하며 따라 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한번쯤 남의 글을 읽고 매료되지 못한 작가는 자기 글로 남들을 매료시킬 수도 없다”며 ‘모방’의 긍정론을 설파하기도 했다. 그 또한 ‘아무 글이라도 써라’라는 해법의 연장선일 것이다. 시나리오작가 지망생들이라면 역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 책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 로버트 매키 또한 그 절대적으로 필요한 ‘아무거나 끄적거리는’ 시간에 대해 말했다. “독창성을 얻기 위해 기이한 시도를 하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며 “소중한 이야깃거리는 대개 몇달, 경우에 따라 몇년에 걸쳐 사실들과 기억들, 상상력을 모으는 노력 끝에야 만들어진다”고 했다. 창작이란 불현듯 주어지는 영감으로 가득 찬 신비로운 과정이 아니라 철저히 현실의 용기와 노력에서 출발한다는 얘기다.

이번호는 시나리오작가 특집이다. <공작>의 권성휘, <뺑반> <1987>의 김경찬, <극한직업> <완벽한 타인>의 배세영, <7번방의 선물> <82년생 김지영>의 유영아, <아이 캔 스피크>의 유승희, <변호인> <공조>의 윤현호 작가를 만났다. 다른 본업을 가진 사람도 있고 워킹맘도 있었다. 그들의 작업방식이 궁금했고, 좋아하는 다른 작가의 시나리오도 물었다. 저마다의 ‘비법’을 얘기하는 가운데, 역시나 ‘글이 막힐 때’ 개인적인 방법을 들려준 이도 있었다. 최근 다양하고 풍성해지고 있는 시나리오작가들에 대한 특집이기도 하지만, 시나리오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도 좋은 만남이 될 것이다. 그들의 다음 작품은 물론, 그 글을 읽은 당신의 첫 작품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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