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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김윤미 대표의 <비도권운산>

처음이라서

감독 나유 / 출연 성룡, 전준, 양소룡, 이려려 / 제작연도 1978년

어두운 극장, 누구를 따라갔는지 언제 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동그래진 나의 눈을 잡아끌던 큰 화면에 가득 찬 화려한 액션과 숨죽인 나의 귀를 압도하던 ‘지직’ 하고 뼈가 후벼 파이던 소리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조그마한 TV로만 접하던 영화라는 장르는, 신체를 압도하는 듯한 그날의 경험 이후 어린 나에게 새로운 보물상자가 됐다. 장면과 장면 사이 어떤 비밀을 뿌려놓았는지 모르지만 수많은 영화들은 내 가슴을 뛰게 하고, 눈물 흘리게 했으며, 주먹을 불끈 쥐게 하거나, 고개를 젖히고 웃어젖히게 했다. 어두운 그곳에서 많은 캐릭터들과 많은 이야기들이 초라한 나의 삶과 함께 지나갔다. 이후 설레는 마음을 안고 매번 극장으로 항하게 만든, 나의 첫 영화가 그 시절 이름도 생소해 속으로 계속 되뇌었던 성룡의 <비도권운산>이다.

성룡의 <취권>이 성공한 이후, 그의 많은 과거 영화가 개봉됐는데 <비도권운산>도 그중 하나였다. 무협지에서 나올 법한 묶음머리를 한 젊은 성룡이 다른 고수들과 함께 어떤 사람을 데리고 무사히 권운산을 넘어야 하는 미션이 이야기의 주를 이룬다. 그가 그 산을 넘기까지 만나는 고수들과의 대립은 앞서 이야기했듯 엄청난 시각적 충격과 흥분을 안겨주었다. 그땐 몰랐지만 지나고 나서 찾아보니 홍콩 최초의 입체영화였단다. 나는 입체영화관에서 관람한 건 아니었지만 화면 앞으로 무술봉이 정면으로 잡히고, 성룡의 발차기가 비켜가지 않고 화면 앞으로 전진했던 장면들이 영화를 더 다이내믹하게 느끼게 했던 것 같다.

특히 오래전에 봐서 정확하지 않지만 성룡 일행이 허름한 객잔에 들어가 메뉴를 주문하는 장면은 아직도 킬킬거리며 회상하는 장면 중 하나다. 아무도 머물 것 같지 않고, 아무것도 팔 것 같지 않은 허름한 객잔 주인은 배고파하는 성룡 일행에게 메뉴가 두 가지나 된다고 자랑한다. 배고픈 성룡은 얼른 하나씩 달라고 주문하지만 나온 것은 그저 ‘계란볶음밥’ 두 그릇뿐이었다. 왜 같은 메뉴를 두개나 주냐고 항변하는 성룡에게 주인은 천연덕스럽게 손가락으로 각각 가리키며 하나는 ‘계란볶음밥’이고, 하나는 ‘볶음밥계란’이라고 말하며, 엄연히 다른 메뉴라고 주장한다. 성룡 일행은 왠지 속은 것 같은 기분에 툴툴거리며 밥을 먹는다. 나는 어린 마음에 그 장면이 마음에 쏙 들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왠지 억울해하는 주인공들의 표정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여러 과정을 거쳐 제작을 하게 된 이후, 가끔 처음 극장에 가서 봤던 <비도권운산>을 떠올린다. 세월이 지나 아쉽게도 온몸으로 반응하던 처음의 그 감흥을 매번 느끼지는 못하지만, 인생도 매번 그렇게 흥분되는 나날이 지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들어가는 재료는 똑같은데 어떤 것은 ‘계란볶음밥’이 되고 어떤 것은 ‘볶음밥계란’이라고 눙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조금은 씁쓸하지만, 처음 그 영화와 더불어 희미한 미소로 추억할 만한 많은 영화와 기대되는 더 많은 영화들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 그것이 큰 위로가 됨을 느끼면서 말이다.

● 김윤미 영화사 OAL 대표. 웹드라마 <먹는 존재>(2015)와 영화 <날, 보러와요>(2016)를 제작하고 <디바>와 <오케이! 마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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