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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박주영 감독의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박주영 2019-08-20

스무살의 판타지를 소환하다

감독 마이크 피기스 / 출연 니콜라스 케이지, 엘리자베스 슈 / 제작연도 1999년

내 인생의 영화라니…. 아주 어려운 질문이다. 너무 많이 썼을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는 것이 부끄럽지만 딱히 다른 표현으로 바꾸기에는 재주가 부족한지 썩 좋은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시, 내 인생의 영화라니…. 그럼 어린 시절로 돌아가봐야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런 얘기도 많이들 했을까 싶어 역시 부끄러워서 다 커서 겪은 영화들을 떠올려보았다. 음….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영화는 불필요한 설명을 하는 대신 바로 벤(니콜라스 케이지)과 세라(엘리자베스 슈)의 안타까울 만큼 망가진 현재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아마도 괜찮았을 과거의 모습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음을 명확히 알려준다.

단 한번! 각자의 시간에 있던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순간. ‘둘이서 이 시련을 극복할 거야’라는 아름다운 엔딩을 순진하게도 잠깐 상상해봤지만 술을 그만 마시라는 말을 하면 안 된다는 벤에게 휴대용 술병을 선물하는 세라에게서 그 기대는 바로 사라졌다. 벤과 세라는 상대가 변하기를 원하지 않았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서로를 방관하듯 그냥 놔두면서도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런 사랑이 가능할까 혹은 이런 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던진 관객의 시선과 의견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듯 둘은 끝까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한다.

다시 꺼내본 이 영화가 ‘어떻게 하면 이런 연인을 만날 수 있을까? 이들처럼 망가지면 될까? 이런 사랑을 하고 나면 죽어도 좋아, 그래! 죽으면 더 멋질 거야’라며 스무살쯤 가졌으면 귀여웠을 판타지로 내 마음을 싱숭생숭 흔들어댔다.

그래서 이참에 나의 사랑 이야기도… 응? 무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 내 지난 사랑 이야기를 가져다대려는 걸 보고 쨉도 안 된다며 비웃을수 있겠지만 그러면 안 된다. 우리의 사랑은 언제나 타인의 그것보다 가슴 저리는 것이지 않나. 아마도 감성이 풍부했던 어느 날에는 벤과 세라보다 더한 사랑을 했을 거라 믿는다. 그러니까 이제 나의 사랑… 이런. 지난 이야기를 떠올리자 머릿속에 ‘그땐 왜 그랬을까 아무거나 해도 좋았을 텐데’라는 후회막심한 문장이 급하게 나타났다. 왜 그렇게 쓸데없이 고민했고 생각이 많았는지 그저 좋아하기만 했어도 충분했는데. 아휴! 이 영화가 후회로 가득 찬 그때의 기억들을 끄집어내버렸다.

내가 하는 이야기들, 특히 사랑 이야기 대부분은 아마도 나와 반대되거나 다시 바로잡고 싶은 마음에 지어낸 이야기일 것이 분명하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머저리 같았던 여러 시기의 나를 기억나게 하는 영화로 언제나 남을 것이고, 그 안에 모인 아름다운 음악, 몽환적인 분위기, 배우들의 엄청난 연기와 표정, 빼어난 영상미는 모르겠고! 이 망할 영화가 끄집어올린 기억 때문에 당분간 후유증에 시달릴 것 같다.

박주영 영화감독. <연인들>(2008), <조금만 더 가까이>(2010), <티끌모아 로맨스>(2011) 등에 연출부로 참여했고 최근 장편 데뷔작 <굿바이 썸머>로 관객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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