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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반태경 PD의 <무간도>
반태경(PD) 2019-11-19

너는 누구냐 나는 누구냐

감독 유위강, 맥조휘 / 출연 양조위, 유덕화, 증지위 / 제작연도 2002년

“선배~ 사내(社內)보에 무간도 제작기를 좀 싣자고 연락이 왔는데요?”

“응? 무슨 무간도?” “아… 무간도 말고 북간도요.”

TV다큐멘터리 <북간도의 십자가>를 제작하던 지난해 가을쯤에 있었던 실제 대화다. 후배에게 핀잔을 준 후에 스스로도 궁금해 무간도와 북간도의 ‘도’가 한자로 같은지 검색하면서(참고로 전자는 道, 후자는 島), 26살 말년 병장 때 외출나와 극장에서 혼자 봤던 인생 영화 <무간도> 시리즈를 잠시 떠올리며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바쁜 다큐 후반작업으로 잊고 있었던 이 영화를 다큐 마감을 끝내고 오랜만에 찾아간 헬스장에서 우연히 또 접했다. 러닝머신 모니터에서 모 케이블 영화채널을 통해 <무간도>를 만나게 된 것이다. 어차피 수십번은 더 본 영화고, 시작한 지 10분쯤 지난 상태여서 채널을 돌리려 했지만 이내 몰입하고 말았다. 결국 영화를 끝까지 보기 위해 러닝머신 위에서 80분을 걷고 뛰다가 반탈진해서 뻗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날 저녁 집에 와서 밤새워 2부, 3부까지 다시 정주행했다. 20대 중·후반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던 늦깎이 복학생/백수 시절에 처음 접했던 영화를 40대 초·중반 아재가 되어서도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이 꽤나 신기했다. 아니, 선과 악으로 명확히 나눌 수 없는 수많은 인물들을 디테일하게 묘사했던 <무간도> 시리즈는 오히려 십수년 사회생활을 거친 지금 더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가장 믿었던 인물이 알고 보니 살인을 지시하고, 스파이였던 사람이 변심해 선한 캐릭터가 되는 등의 스토리는 누아르 영화의 클리셰라기보다 우리 삶 그 자체라는 생각도 들었다.

3부작 중 3부의 완결성이 가장 떨어진다는 평도 있고, 개인적으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3부에 있었다. 유건명(유덕화)이 거울을 바라보는 동안 진영인(양조위)으로 바뀌는 장면이었다. 저마다 가지고 있을 분열적인 자아,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있을 욕망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랄까. 그리고 1부에서 조직 내 스파이를 찾던 한침(증지위)이 경찰 스파이였던 진영인에게 “내가 가장 믿는 건 바로 너야”라는 대사를 남길 때의 느낌은 곱씹을수록 오묘하다.

지난해 연말 아내와 단둘이 홍콩 여행을 다녀왔다. 결혼 12년 만에 아이들을 놔두고 처음 감행한 여행이었다. 막 TV다큐 마감을 끝내고 출발한 여행인지라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못했는데, 비행기 안에서 “홍콩에서는 어디를 가보고 싶어?”라고 묻던 아내의 질문에 바로 ‘<무간도> 옥상’이라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진영인이 황 국장에게 자기의 정체성을 여러 번 되묻던, 어찌보면 같은 캐릭터라고도 볼 수 있는 진영인과 유건명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던 바로 그곳. 홍콩에 도착하자마자 폭풍 검색을 했지만 그 장소 그 뷰는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을 삼키고 돌아왔다. 그리고 올가을 홍콩발 외신을 접하며 다시 <무간도>를 떠올렸다. 굴곡된 현대사를 관통해왔던 홍콩의 민중들, 영화 속 진영인-유건명-한침-황 국장같은 인물들이 바로 저 군중들 사이에도 있으리라는 생각에 기분이 묘했다. 그러고 보니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될 무렵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았던 <무간도2: 혼돈의 시대>(2003)의 부제는 바로 ‘혼돈의 시대’였다. 혼돈의 시대, 무간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이 영화의 정주행을 권한다.

반태경 CBS PD. <다시 쓰는 루터 로드> 등 기독교 TV다큐멘터리를 연출하다가, 지난 10월 17일 개봉해 현재도 일부 극장에서 상영 중인 <북간도의 십자가>라는 다큐멘터리영화를 만들어낸 ‘영화감독’이 되어 스스로도 많이 당황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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