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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심찬양 감독의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
심찬양(감독) 2019-12-17

늘 고마운 옛 친구처럼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 출연 크리스천 베일, 히스 레저, 에런 에크하트, 매기 질렌홀, 마이클 케인 / 제작연도 2008년

입대를 앞두고 갑자기 영화가 찍고 싶어졌다. 그냥 한번 해보고 싶었다. 무작정 동아리 선배의 DV 캠코더를 빌려 동네 친구들을 모았다. 막무가내로 촬영을 끝내고 나서야 카메라가 고장났다는 것을 알았고 영화는 결국 완성되지 못했다. 하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되는 건 딱히 없었던 20대 초반, 허탈한 마음에 극장으로 향했다. 그때 본 영화가 <다크 나이트>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마지막 터널 신의 두근거림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이런 영화를 찍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스치듯 했던 것 같다. 복학 후,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 단편을 찍으며 연출부 생활을 했다. 그들과 마침 개봉한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함께 보며 어렴풋이 감독을 꿈꿨다. 졸업이 닥쳐올 때까지도 여전히 되는 건 없었다. 우물 속 어린 브루스 웨인처럼 두려운 마음으로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던 어느 밤, 친구들과 <인터스텔라>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두근거림 가득한 그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모든 걱정이 사라지던 신비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영화로 담아내고 싶었다. 우리 모두가 좋아했던 감독, 그 감독의 영화에 관한 영화를 만들면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어둔 밤>(영어로 ‘다크 나이트’)은 <덩케르크>가 개봉하던 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이 영화 덕에 나는 다음 영화를 찍을 수 있었고, 아직은 감독의 삶을 꿈꾸며 살고 있다.

오랜만에 다시 본 <배트맨 비긴즈> 속 브루스 웨인은 젊고 패기가 넘쳤다. 스승인 라스 알 굴로부터 고담을 구해낸 브루스는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라는 거대한 혼돈을 만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고, 오로지 고담을 위해 어둠의 기사가 되길 선택한다. 7년의 세월이 흐른 후 <다크 나이트 라이즈> 속 브루스가 상처입은 영혼과 늙고 병든 몸으로 다시 한 번 고담을 위해 일어서는 순간, 나는 아이처럼 “데시 데시 바사라!”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모든 걸 주었잖아요!”라는 살리나의 외침에 “다 준 것은 아니지. 아직은”이라고 당연한 듯 답하는, 조금은 과하게 진지한 그의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변함없는 듯해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또 영화를 다시 볼수록 이번에는 브루스보다 주위 사람들에게 시선이 더 머물렀다. 알프레드, 제임스 고든, 루시어스 폭스, 레이첼 도스 둘, 로빈, 그리고 살리나 카일을 보며 내 친구들을 떠올렸다. 어린 브루스에게 코트를 덮어주었던 고든처럼, 검은색 칠을 잘했던 폭스처럼, 결국은 돌아온 살리나처럼, “아직 날 포기하지 않았나요?”라고 묻는 브루스의 질문에 두번이나 “네버!”라고 단호하게 답했던 알프레드처럼, 불안하기만 했던 그때 당연한 듯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 친구들은 나의 영웅이었다.

어떤 영화는 그 영화를 봤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함께 봤던 친구들을 기억나게 하고, 때론 영화가 스스로 친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의 답은 매번 바뀔 것 같지만 인생 영화로는 결국 이 작품을 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취향은 계속 변하지만, 옛 친구는 늘 고맙고 반가운 법이니까. 언젠가, 그 친구들과 모여 다시 한번이 영화들을 보고 싶다. 걱정 없이 웃고 떠들고 싶다.

심찬양 영화감독. 데뷔작 <어둔 밤>(2017)을 연출했다. 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코리안 판타스틱 작품상을 수상했고 현재 차기작을 완성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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