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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전영객잔] 순수 액션의 맛

지나 카라노의 신체와 스티븐 소더버그의 연출이 빚어낸 <헤이와이어>의 액션에 매료되다

<헤이와이어>

나는 스티븐 소더버그의 <헤이와이어>를 보며 어린 시절 본 액션영화들이 마구 섞이며 업그레이드되는 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주인공이 매력적이고 액션이 인상적이어서 상투적인 스토리 전개도 다 용서가 된 채로 몇몇 이미지들이 마음에 남아 가슴이 슬쩍 뛰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는 영화들 말이다. 절대적으로 이는 여주인공 말로리 케인을 연기한 지나 카라노의 신체 연기와 스티븐 소더버그의 능란한 연출 덕분이다. 미국 영화평론가 피터 트래비스의 표현대로 이 영화는 ‘앨프리드 히치콕이 만든 팸 그리어 영화’라는, 일급의 서스펜스 기교로 B영화를 만들고자 한 소더버그의 창작목표를 완벽하게 구현한 작품이다. 그것이 다분히 개인적인 취향을 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다소 길게 말하고 싶은 이유이다.

날것 그대로의 액션

<헤이와이어>의 첫 장면, 말로리 케인은 한적한 시골 레스토랑에서 차를 따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밤을 새워 피곤하다고 투덜대는 건장한 청년이 그녀 앞에 앉아 뭔가 꼬인 듯한 일의 서두를 얘기한다. 다짜고짜 그는 말로리 케인을 공격하고 말로리 케인은 그에 지지 않고 거세게 맞선다. 컷을 많이 나누지 않는, 클로즈숏으로 쪼개지 않고 풀숏 범위로 담아내는 이들의 액션은 날것 그대로의 느낌이 강하다. 실전 무술 유단자인 말로리 케인 역의 지나 카라노는 때리고 맞고 꺾고 꺾이는 이 영화 속 모든 액션장면을 실제 자기 몸을 드러내며 연기한다. 관객의 어안이 벙벙해지게 만든 이 첫 장면 이후 <헤이와이어>는 엉겁결에 자기 차를 말로리에게 내주고 동승하게 된 19살 청년에게 말로리가 이 모든 사달의 내막을 들려주는 회상으로 이어진다. 영화 중반 부분까지 회상장면과 현재 도주 중인 말로리의 모습이 교대된 다음, 후반부는 자신을 도구로 이용한 뒤에 죽이려 한 암살청부업체의 보스이자 전 애인에게 복수하려는 말로리 케인의 활약을 담는다. 앞서 말했듯이 이런 스토리는 좀 황당하다. 반체제 중국 지식인 납치를 둘러싼 임무를 정부와 관련된 민간업체가 수행한다는 설정부터, 바닷가에서 벌어지는 클라이맥스 액션장면에 이르기까지 관행적인 상투형으로 의심받을 만한 게 많다.

그런 것은 이 영화에서 중요하지 않다. 스티븐 소더버그는 말로리 케인이 쫓기는 상황을 보여주면서 바르셀로나와 더블린과 뉴멕시코와 뉴욕과 기타 이름없는 도시의 사무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도회적 공간을 횡단하면서 자신을 보전하는 말로리 케인의 슈퍼히어로다운 형상을 인상적으로 화면에 묘사한다. 말로리는 전직 해병대요원 출신으로 말수가 적고 건장한 체구에 나름 미모가 있으며 어떤 상대에게도 자기 속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사는 별로 없으며 꼭 대사가 필요한 상황에서만 말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말로리 역의 지나 카라노는 굳이 감정 연기를 할 필요가 없다. 대다수 상황에서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맞서기 위해 몸으로 반응해야 하는 연기를 한다.

무성영화적인 순수영화의 쾌감

이를테면 영화 중반, 말로리가 폴이라는 남자와 함께 부부로 위장하고 아일랜드의 부호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우리는 그녀가 무슨 임무를 받아 그런 행동을 하는지 처음에는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은 호텔에 투숙하고 동시에 권총을 각자의 침대에 놓으며 무장해제를 하고 파티에 갈 준비를 한다. 남자가 먼저 샤워한다고 말하고 곧바로 샤워하러 들어간 사이에 말로리는 그 남자의 소지품을 뒤져 컴퓨터를 꺼내 특정 정보를 스캔한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지 우리는 알 도리가 없지만 그들이 임무 때문에 함께 행동 하는 사이이고 서로를 믿지 못하며 그런 극도의 경계 상태에서 지내야 한다는 게 서스펜스를 준다. 화면에는 별다른 대사 정보가 없는 대신, 긴 침묵과 많은 동작의 정보들이 절도있는 화면으로 이어지는데 이런 무성영화적인 순간이 이 영화에 비상한 순수영화의 쾌감을 부여한다.

아일랜드 부호를 파티장에서 만나고 돌아온 직후 호텔 방에 들어서자 남자는 다짜고짜 말로리를 공격하고 그들은 호텔 방 내부를 박살내면서 지독한 혈투를 벌인다. 수세에 몰린 남자가 뭐라 변명을 하지만 말로리는 그 말을 듣지도 않은 채 계속 공격을 이어가고 굉장한 저항을 받은 끝에 남자를 굴복시킨 뒤 권총을 꺼내 베개를 대고 그대로 사살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위장을 한 말로리가 호텔을 나설 때 인적이 드문 거리 맞은편에선 미행자로 의심되는 남자가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다. 말로리는 걷는다. 또박또박 걷다가 서서히 뛰기 시작한다. 맞은편 남자도 뛴다. 이제 베이지색 바바리코트를 입은 그 남자가 미행자인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말로리는 대로에서 벗어나 더블린 시내 곳곳의 골목을 횡단하며 경찰차가 몰려오자 마치 그 지역의 지형지물을 숙지해놓은 것처럼 익숙하게 어느 건물에 들어가 옥상으로 올라갔다가 지붕을 타고 현기증 나는 탈출극을 벌인다. 이 모든 상황이 영화에서는 별다른 대사 없이 오로지 시각적으로만 묘사된다.

말로리 역의 지나 카라노가 뛰는 모습은 그 자체로 굉장한 시각적 인장을 남긴다. 고르게 호흡하며 억세게 뛰는 그녀의 이미지는 실제로 보는 것으로부터 일어나는 매혹적인 동일시가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실감하게 한다. 소더버그의 연출은 주로 그녀의 얼굴이나 신체 부위에 접근하는 대신, 거리를 두고 길게 그녀의 전체 모습을 카메라로 따라가는데 그런 그녀의 전체 형상 뒤로 잡히는 도시의 풍경과 갖은 사물들을 보여주면서도 리듬을 긴장감있게 만들어낸다. 단순한 연출인데, 이 리듬감이 어떻게 근사하게 형성되는지는 화면 속 인물의 움직임과 그걸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카메라의 조응감각을 통해 만끽할 수 있다. 이를테면 앞서 말한 경찰 특공대에 쫓기는 장면에서 건물 옥상을 가로지르며 말로리가 도망을 칠 때 화면 전경에 보이는 말로이가 옥상 건물에 몸을 숨기면 화면 후경에 경찰 특공대원들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데 그 절묘한 타이밍의 화면 내 관심점 이동을 통한 서스펜스의 확장이 화면 내의 모든 움직임을 관능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특수효과가 배제된 기교, 기름기 없이 단백한 음식

그럼 이런 것들은 감독의 뛰어난 전술 아래 선수들이 최고로 단련된 움직임을 보여주는 최고 수준의 축구 클럽 팀들간의 경기를 볼 때의 쾌감과 무엇이 다른가. 굳이 다르다고 강변하고 싶지는 않으며 스포츠를 볼 때의 대리만족 쾌감과 유사한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수한 기교 발휘가 기교 발휘로만 끝나지 않는 그 무엇을 상기시킨다고, 나 같은 관객은 뭔가 내부에 충만한 기운을 얻는 듯한 게 기뻤다고 말하고 싶다. 본다는 것의 기쁨, 실제 거리에서 찍은 화면에서 채집되고 연출된 소음들이 주는 하모니가 주는 기쁨이다. 겉으로는 일상적으로 평온한 듯이 보이는 다큐멘터리 화면에서 관객을 공모자로 만들어놓고 벌이는 서스펜스 추격전의 시청각적 간결함과 화면구성과 연결의 폭발력은 울퉁불퉁한 전시용 근육이 아니라 실제로 쓰이는 잔근육으로 단련된 인간의 몸의 아름다움을 보는 듯한 착각을 준다. 단순해서 굳이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기교, 화면 구성과 연결에만 의존하는 기교, 특수효과를 배제한 기교, 스타카토 컷들의 나열을 통한 눈속임을 배제한 기교는 조미료를 치지 않은 기름기 없는 음식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단순한 기교의 성찬 속에서 말로리 케인의 단독자적, 슈퍼히어로적 영웅의 비장미는 부실한 스토리 전개 속에서도 숙성되어 온전한 형상으로 자리잡는다. 정부나 정부 주변의 유사 조직에 배신당하는 조직원의 운명이라는 소재는 닳고 닳은 것이고 자기 존재를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주인공의 모험담도 히치콕의 고전영화에서 숱하게 봐온 것들이다. 그런데도 나 같은 관객이 이 영화적 모험담에 매혹당하고 설득됐다면 이는 소더버그의 담백하고 능란한 연출과 지나 카라노의 육체적 매력이 최소한의 자기 도취만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나 카라노의 말로리 케인은 스타 페르소나의 뻐기고 우쭐하고 과시적인 기운이 없다. 그녀는 말 그대로 자기 몸으로 고군분투하며 (연기력 때문인지 스타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포커페이스로 일관하며 감정의 희로애락의 고저 굴곡이 약하다. 영화 초반의 회상단락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장면들의 푸른 색감은 과장된 모험담의 윤기를 탈색시키고 주인공의 모습을 차분히 관찰하며 종종 말로리 케인이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에선 표나지 않게 화면의 어둠이 적당한 비율로 그 감정을 누르며 영화적 소통 방식의 차원으로 끌어온다. 예를 들어 말로리 케인의 아버지의 저택에서 벌어지는 후반부의 격투장면에서 말로리가 동료였던 배신자를 처단할 때 그녀의 성난 발차기와 꺾기가 작열하는 장면에서 연출된 미묘한 어둠의 농도는 분노한 그녀를 바라보는 그녀 아버지의 시점을 통해 인물이 연기한다기보다는 보여지는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공감각적으로 호소한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준다.

A급 프로덕션 퀄리티로 B영화의 시청각적 활기를 재생하기

이런 하드보일드 스타일은 캐스팅의 묘미를 통해서도 강화된다. 무명배우인 지나 카라노를 중심에 놓고 소더버그는 마이클 더글러스, 이완 맥그리거, 채닝 테이텀, 마이클 파스빈더, 안토니오 반데라스 등 유명 배우들을 조연으로 배치하면서 그들에게 조역과 단역 사이의 중간쯤에 위치한 역할을 주고 있다. 이완 맥그리거가 연기하는 케네스는 말로리의 연인이자 회사 보스이기도 한데 실제 스토리 전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다. 마이클 더글러스는 카메오라 해도 무방하고 마이클 파스빈더는 여주인공에게 무참하게 당한다. 가장 희롱당하는 듯한 느낌의 캐릭터는 로드리고를 연기하는 안토니오 반데라스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복수하러 찾아온 말로리를 쳐다보며 멍청한 표정을 짓는데, 영화는 그의 표정으로 끝난다. 유명 배우들이 스토리 내의 자그마한 역할로 축소되어 무명 여배우가 연기하는 여주인공 말로리를 보완하는 것은 이 영화를 훨씬 건조하고 활기차게 만든다. 그들의 이름값에서 기대한 역할에 대한 관객의 기대치는 어긋나며 그들이 쪼그라든 플롯의 공간을 비범한 신체적 능력을 지닌 포커페이스의 무명 여배우가 활보한다. 전문 배우들의 풍부한 연기력이 한정된 역할 속에서 잠깐씩 빛을 발하는 동안 스토리는 강한 여전사 말로리를 축으로 쭉 뻗어나가는 것이다.

나는 일정하게 권력을 쥔 영화감독이자 제작자인 스티븐 소더버그가 일급 스탭들, 배우들과 함께 즐겁게 영화산업의 규칙을 지키며 A급 프로덕션 퀄리티로 B영화의 시청각적 활기를 재생하려 한 이 시도가 무척이나 즐거웠다. 모든 것이 과잉으로 도배된 현재의 상업영화 판도에서 이 영화는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의 것을 추구하려는 듯한 환영을 제공하며 영화오락의 무용한 즐거움을 전해준다. 속이 텅 빈 유치함이라 해도 단독자 영웅의, 그것도 남자를 능가하는 슈퍼 여전사의 전 지구를 횡단하는 듯한 모험담을 오롯이 시청각적 공명으로 채워넣으려는 감독의 시도가 대단해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매체를 장악하고 산업 내에서 일정하게 발언권을 쥔 감독이 동료들과 작당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즐거움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평자로서 만드는 이들의 이런 프로페셔널리즘이 부럽고 시장의 압박을 불경한 유희로 바꾸는 분방함이 존경스럽다.

<헤이와이어>는 당장 인구에 회자될 만한 영화가 아닐지 모르지만 스티븐 소더버그의 작품연보에서 사소한 영화로 남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산업적으로, 또는 예술적으로 과중한 부담을 지게 된 매체가 되어버렸지만 결국 영화의 원형은 지식인들이 접수하기 이전의 슬랩스틱영화가 보여준 원초적 활기에 있을 것이다. 극도의 단순한 세팅 속에서 배우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며 거기서 인생의 유비를 찾아내는 즐거움은 이제 흔치 않은 것이 돼버렸다. 이 영화는 영화의 근본적인 즐거움은 액션이라는 것, 화면 내의 움직임과 카메라의 조응관계야말로 어떤 웅변조 연기보다 호소력이 짙다는 것을 증명한다.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이 다 시늉이고 관습이고 약속이지만 그걸 전제로 깔아놓고 그저 그런 스토리텔링에 새겨넣은 시각적 인장의 흔적들은 얼마나 근사한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 이 영화를 오랫동안 나만의 베스트 목록에 넣어두고 곧잘 챙겨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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