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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전영객잔] 악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다

김휘의 영화 <이웃사람>과 강풀의 원작만화 <이웃사람> 사이를 바라보다

나는 김휘의 영화 <이웃사람>을 먼저 보고 강풀의 원작 만화를 나중에 봤다. 내용은 거의 대동소이했다. 중간에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듯 리듬이 불안한 대목이 있지만 이 정도면 원작의 각색 영화로는 준수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에 들어 있던 호러영화의 요소를 감했다거나, 누락되거나 변형된 몇개의 디테일들이 영화를 원작만 못하게 만들었다는 강풀 원작 팬들의 지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수긍할 만한 것도 있다. 연쇄살인범 류수혁이 경비원 황씨를 자신의 아파트 문 앞에서 살해한 뒤에 바닥에 흥건히 퍼진 핏자국을 와인병을 깨트린 흔적으로 위장하면서 위기를 넘기는 설정 같은 것이 그렇다.

마동석이 연기한 안혁모 캐릭터의 중요성

개별 인물들의 사연이 하나로 모이지 못하고 따로 논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건 웹툰을 읽는 독자의 호흡을 제한된 상영시간 안에 봐야 하는 관객의 호흡으로 바꿔야 하는 매체의 다른 특성상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게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듯 중반 대목이 위태롭다고 느꼈던 것의 핵심이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연쇄살인마의 간격을 두고 벌어지는 살인에 대해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사전에 충분히 인지할 만한 정보를 얻는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냥 지나치거나 고의로 무시한다. 경비원 표종록은 5개월 남은 살인사건 공소시효를 버티기 위해 류수혁의 수상한 행동을 외면한다. 가방가게 주인 김상영은 괜히 경찰에 신고했다가 귀찮은 꼴을 당할까봐 아내의 충고를 따라 경찰 신고를 포기한다. 사채업자이자 동네 깡패인 안혁모는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질 위인이 아니다. 류수혁에게 딸을 잃은 송경희는 류수혁을 유심히 관찰할 기회를 얻지만 자신의 슬픔을 감당하느라, 그리고 밤마다 찾아오는 딸의 유령의 존재에 혼비백산해 있어서 여유가 없다. 아파트 부녀회장인 하태선은 재개발 문제로 동네 주민들을 설득하느라 자기 딸 챙기는 것도 잊어버리는, 오지랖이 넓은 캐릭터이자 욕망으로 공중부양 상태가 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줌마다. 피자 배달원인 안상윤은 열흘마다 정기적으로 라지 사이즈 피자를 배달시키는 류승혁에 대해 체계적인 관심을 가진 유일한 인물이며 무슨 추리 동호회 같은 데 가입해 있기도 한 호기심 많은 청년인데 경찰 신고를 표종록에게 제지당한 뒤 그냥 체념한다.

동네를 주름잡는 살인마를 충분히 사전에 잡아낼 수 있었던 동네의 인적 네트워킹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것이 영화 <이웃사람>의 드라마 동력을 지탱하는 긴장이지만 좀처럼 쉽게 점화되지 않는다. 나는 이게 이 영화의 한계이지만 동시에 대중영화로서 장점을 지닐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본다. 영화는 웹툰 만화처럼 두루 공평하게 캐릭터에 고루 이입될 수 없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각 인물에 모두 감정이입하기에 너무 바쁘다. 스토리는 흘러가고 장면이 이어지면 앞 장면의 정서는 잊게 된다. <이웃사람>의 장면 전환 기교는 서투른 편인데, 캐릭터들의 동선이 다르고 제한된 범위에서만 겹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점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중반까지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고 후반부는 너무 가파르게 속력을 올린다는 부담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 김휘는 현명한 선택을 한다. 장면 배분은 공평하지만 관객의 감정이입이 세게 들어가는 한 인물은 마동석이 연기하는 동네 양아치 안혁모다. 웹툰에서와 달리 영화에서 안혁모는 관객에게 상당한 심리적 안전판 역할을 한다. 동네 사람들이 너무 무기력하게 살인범 류수혁에게 끌려가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드라마의 흐름에서 안혁모는 돌아가는 정황을 전혀 모른 채, 혹은 그런 것에 전혀 상관하지 않은 채 자기 눈앞에 놓인 일만 처리하기 바쁘다. 그는 장애인 표지판이 붙은 주차구역에 마음대로 차를 주차하는 안하무인 기질의 소유자로서 그게 자기 자리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우연히 차를 세워놓은 류수혁을 불러내 심한 폭언을 하고 인격을 모독한다. 다른 인물들, 선량하거나 최소한 평범한 인물들에 비하면 안혁모는 나쁜 놈이다. 혈육인 외삼촌에게 돈을 빌려준 뒤 갚지 않는다고 두들겨 패는 이 인물에 대한 관객의 인상은 인간 말종의 그것이다. 그런데 이 인간 말종이 류수혁과 대면해 보여주는 안하무인의 거친 행동은 류수혁을 보면서 위축돼 있는 다른 동네 사람들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묘한 쾌감을 준다. 심지어 그가 류수혁의 음모에 말려들어 심야에 류수혁과 시비를 벌이다가 류수현의 살인도구에 지문을 남기는 상황에서도 관객은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게 된다.

어쩌다 이런 상황에 놓였을까. 웹툰에 비해 명시적으로 분명하게 심리적 추가 기우는 이 설정은, 마동석이라는 배우가 주는 육체적 친근감(그는 웹툰과 싱크로율이 100% 일치한다고 원작자와 감독이 말하고 있지만 원작에 비해 인물의 각진 느낌이 덜하고 체격은 훨씬 풍성하다) 덕분인 것도 있지만 원작에는 없었던 디테일이 추가된 덕도 있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 안혁모는 차를 빼다가 마음 착한 여학생 유수연의 주차 안내를 받는다. 부녀회 회장 하태선의 딸인 유수연은 웹툰과 마찬가지로 영화에서도 아직 때묻지 않은 선량함의 화신으로 그려진 인물이다. 세상을 온통 선의로만 대하는 이 소녀는 우락부락한 안혁모의 외모에 전혀 위축되지 않고 퉁명스런 안혁모에게 나긋하게 팔뚝 문신을 만져봐도 되느냐고 물어본다.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유수연이 살짝 안혁모의 팔뚝을 누르자 팔뚝 살이 살짝 들어갔다가 튕겨 올라온다. 안혁모는 팔을 슬쩍 휘두르며 귀찮다는 듯이 쑥스러움을 표시하고 유수연의 손은 놀라 물러서는 듯하다가 다시 안혁모의 팔뚝을 아주 미세하게 건드리고 물러난다.

원작과 다른 영화의 에너지는…

원작에는 없었던 이런 디테일은 관객을 악인 안혁모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효과적인 잔상을 남긴다. 안혁모는 별 이상한 애도 다 있네, 라는 심정이었을 것이고 유수연은 재미있는 아저씨가 다 있네, 라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돌리는 반상회 통지서를 주는 유수연에게 안혁모는 일수대출 전단을 주며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장난을 친 뒤 달리는 차 안에서 슬쩍 피식댄다. 이 장면의 효과가 원작에 비해 훨씬 강렬한 나머지 류수혁이 빗길에 귀가하는 원유선을 자기 차에 태워 납치해 죽여버린 사건과 정확히 대구를 이룬다. 어른이 아이에게 친절을 베풀듯이 위장해 살인을 저질렀고 아이가 어른에게 친절을 베풀어 악당 어른을 잠시 웃게 했다. 영화의 말미에 경찰에 용의자로 붙들린 안혁모가 자신의 알리바이를 대준 외삼촌의 기지로 경찰서를 빠져나와 류수혁의 집을 향해 달릴 때 그 클라이맥스는 온전히 그의 에너지에 기댄다. 이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선의가 마침내 사건을 해결한다는 원작의 구도와는 아주 약간 다른 것이다. 경비원 표종록, 피자 배달원 안상윤이 동시에 류수혁의 집으로 쳐들어가고 류수혁에게 납치돼 아직 살아 있던 가방가게 주인 김상영이 류수혁에게 맞서 싸우기는 하지만 사건 해결의 열쇠를 그가 쥐고 있다는 느낌은 영화에서 훨씬 더 강하다. 안혁모는 순전히 자기에게 누명을 씌운 류수혁이 괘씸해 복수하려고 류수혁에게 달려가는 것이지만 관객은 그를 서부영화의 개과천선한 무법자 총잡이로 오인한 채 드라마의 클라이맥스를 받아들이는 아이러니가 있다(감독의 말에 따르면, 심지어 화면 배경에는 ‘우리의 수호천사가 되어주세요’라는 학교 담장 현수막이 희미하게 보인다고 한다. 그 현수막은 촬영 로케이션 장소에 실제로 걸려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찍혔지만 오해를 피하기 위해 눈에 잘 띄지 않을 만큼 배경의 노출을 후반작업에서 줄였다고 했다).

악인을 응징하기 위해 그보다 물리적으로 더 센 힘을 지닌 또 다른 악인이 등장하고 그를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이 설정은, 영화 말미의 경찰서 알리바이 확인 취조장면에서 안혁모가 괴롭히던 외삼촌이 안혁모의 모친상에도 찾아가지 못하고 부도로 인해 도망다녀야 했던 상황을 고백함으로써 안혁모의 외삼촌을 향한 분노가 조금 누그러지며 심정적으로 화해하는 장면 덕분에 더욱 고조된다. 그의 존재는 모든 동네 사람들이 희생자가 돼야 하는 현실에서 유일하게 돌출한다. 그의 물리적 힘 덕분에 그는 의도하지 않은 가운데 정의의 실제 집행자가 된다. 배우의 육체적 현전의 느낌으로 강화된 이 몰입과 집중의 강도는 김윤진이 연기하는 송경희가 새어머니의 죄책감을 떨쳐내고 비로소 딸 원유선의 유령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장면과 정서적으로 다른 배색이다. 송경희가 발휘되지 않았던 모성을 스스로의 내면에서 끄집어내어 결국 자신의 딸과 흡사한 유수연이 류수혁의 또 다른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클라이맥스 장면은, 류수혁의 집으로 찾아가 류수혁을 사정없이 난타하며 간단히 제압하는 안혁모의 존재감과 대비된다. 김휘의 연출은 그런 점까지 정확히 짚어내지는 못한다. 모든 것이 종결되고 안혁모가 아파트 바깥으로 나왔을 때 유수연의 어머니 하태선은 안혁모를 범인으로 오해하고 그를 공격하며 딸을 내놓으라고 울며 공박한다. 그때 송경희의 보호를 받는 유수연이 저 뒤쪽에 등장한다. 안혁모와 송경희 사이에는 화면의 의미있는 연결점이나 대비점이 드러나는 순간이 없다.

배우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김휘의 드라마에는 송경희가 움츠려 있던 자신의 트라우마를 꺼내 스스로 대면하고 자신의 잃어버린 딸에 대한 죄책감에서 나아가 같은 동네에 사는 선한 꼬마에게도 배려의 손길을 뻗을 수 있게 되는 그 갱생의 에너지가 다른 인물들로 퍼져나가게끔 하는 기세가 약하다. 영화 중반 흐름이 덜컥거린다는 느낌을 준 것의 정체는, 송경희와 원유선의 드라마가 짚어주는 감정의 파고가 다른 장면들로 퍼져나가 잠복해 있다는 느낌을 관객에게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끝내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표종록의 드라마에도 어떤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 표종록은 십수년 전 저지른 살인의 희생자 유령이 늘 곁에 있다는 환영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그는 가해자이며 류수혁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처지에 있다. 악의 집행은 끈질기게 흔적을 남기고 따라붙는다는 것이 이 영화와 웹툰의 공통된 테마이지만 영화에서 천호진의 외모를 통해 보다 친근감있게 구현된 표종록 캐릭터는 송경희의 갱생의 드라마와 붙을 가능성을 잃어버린다. 이는 좀 이상한 일이다. 원작에서와는 달리 영화는 표종록의 이후 삶에 대해 어떤 논평도 남겨놓지 않았고 그만큼 관대한 처분을 내렸기 때문이다(원작에서는 표종록이 자신이 죽인 류수혁의 유령을 달고 남은 생을 살 것이라는 암시를 남긴다).

악은 그 자체로 악이며 들여다보면 찌질하다

감독 김휘는 원작자 강풀보다 훨씬 비관적인 비전의 소유자이다. 아마 그는 더 비관적으로 영화를 찍고 싶어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때문에 그는 안혁모의 드라마와 송경희의 드라마와 표종록의 드라마 사이에서 어떤 접합점을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 그로 인해 강화된 것은 더 센 물리적 힘을 지닌 악당이 더 나쁜 악행을 저지른 살인범을 응징한다는 결말이다. 김휘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이러니였겠지만 약간은 모순되게도 힘을 예찬하는 혐의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를 응원하고 싶다. 안혁모 역의 마동석 못지않게 류수혁을 연기한 김성균의 뛰어난 시각적 인상은 이 영화가 악의 현현과 그 악의 소심한 이면을 강조하는 데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증명한다. 영화 말미에 표종록이 휘두르는 스패너에 류수혁의 머리가 깨질 때 김휘의 연출은 화면을 둘로 나누고 류수혁의 얼굴을 대담한 클로즈업으로 잡으며 시간을 길게 늘린다. 이런 식의 대담한 클로즈업은 특히 류수혁에게 더 많은데, 이 악의 표정은 속을 알 수 없어서 공포스러운 그런 것이 아니다. 원작에 비해 훨씬 더럽고 추레한 물리적 특성을 지닌 김성균의 류수혁은 추상적으로 설계된 여타 영화에서의 살인마 묘사와 궤를 달리한다. 그는 찌질하게 약자를 상대할 뿐이고 자신이 죽인 자의 유령을 보고 공포에 시달린다. 김휘의 클로즈업 효과는 악을 담대하게 응시하자는 것이다. 악은 그 자체로 악이며 들여다보면 찌질하다. 다른 포장이 필요없으며 우리가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이렇게 간단하게 웅변하는 영화는 별로 보지 못했다. 이런저런 드라마의 허점에도 불구하고 비관주의자 김휘의 연출은 우리에게 아이러니의 겹과 악을 향한 대담한 응시라는 선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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